[컴퓨텍스 2023] 3년 만에 열린 컴퓨텍스, 현장에서 대만의 저력을 마주하다
[컴퓨텍스 2023] 3년 만에 열린 컴퓨텍스, 현장에서 대만의 저력을 마주하다
  • 안병도
  • 승인 2023.06.06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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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바일 시대가 되면서 전통적 의미의 PC 산업은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 적이 있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가 연이어 전 세계를 강타할 때 PC를 태블릿이 대체하면서 PC 시장이 자연스럽게 작아질 거란 의미였다.

이번 컴퓨텍스 2023을 보면서 그 전망은 틀렸다는 것을 강하게 느꼈다. PC를 기반으로 한 산업은 오히려 인공지능(AI)과 결합되면서 더 큰 기업 시장을 만들고 있다. 또한 개인 사용자에게는 더욱 현실감 있는 게임을 통해 모바일 기기에서 느낄 수 없는 경험을 제공했다. 이 모든 것을 뒷받침하는 건 바로 현장에서 느낀 '대만의 힘'이었다.


컴퓨텍스(COMPUTEX)는 매년 대만 타이베이에서 열리는 글로벌 IT 축제다. 특히 올해 행사는 지난 2019년 이후 4년 만에 오프라인에서 정상 개최된 행사로 참가업체의 규모와 전시내용에 큰 관심이 쏠렸다. 단순히 제품정보를 듣고 성능을 보는 건 온라인으로도 할 수 있지만, 기쁨이나 열정 같은 분위기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야만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

컴퓨텍스의 올해 주제는 '함께 창조하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분야별로 차세대 고성능 컴퓨팅, 인텔리전트 응용, 차세대 통신, 비욘드 리얼리티, 혁신과 스타트업, 지속가능한 그린에너지 등 6개 테마로 나뉜다. 총 26개국, 1천여 개의 다양한 기업들이 3천여 개 부스를 통해 새로운 기술을 전시한다.


행사장인 타이베이 난강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기자가 느낀 건 안에서 훅 하고 바람처럼 불어오는 활기였다.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보려는 관람객과 열심히 설명하는 부스직원이 발산되는 특유의 분위기가 전달된 것 같다. 대규모 전시회에 갖춰진 보통 큰 부스, 화려한 조형물, 많은 인파와는 별도로 곳곳을 돌아다니며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표정이 인상적이었다.

3년의 공백 후에 치른 행사에서 곧바로 분출되는 활기. 그것은 큰 변화가 오고 있는 전 세계 ICT시장을 대만이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다고 생각된다.

"대만의 하이테크 산업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대만은 글로벌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이며, 민주주의 가치를 충분히 발휘하면서 글로벌 기술 산업 발전을 촉진하겠다."


차이잉원 대만 총통의 컴퓨텍스 2023의 개막 축사가 이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앞으로 전 세계적으로 펼쳐질 디지털과 인공지능의 시대에 대만 ICT 산업이 확고한 포지션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전 세계의 기술을 리드하겠다는 선언이다.

한때 한국에게 메모리 반도체와 낸드플래시 분야에서 완패해서 시장에서 철수한 대만이 화려하게 재기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 답은 챗GPT로 인해 떠오르는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에서 필수적인 칩 생산에서 엔비디아와 TSMC란 대만의 두 기업이 압도적인 우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황즈팡 타이트라 회장은 이번 컴퓨텍스 2023의 개막식에서 "컴퓨텍스는 1981년 PC의 탄생과 함께 시작해 PC와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와 빅데이터 시대로 이어지는 혁신의 시기를 함께 해 왔다"면서 "대만은 인공지능 시대로의 전환에 그치지 않고, 시대를 이끌어갈 준비가 됐다"라고 밝혔다.

또한 펑솽랑 TCA 이사장은 "최근 AI가 전 세계적인 관심사로 부상하면서 HPC(고성능 컴퓨팅)과 AI 수요를 이끌고 있다.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발전의 중심에 있으며 첨단 공정과 양산 능력, 납품 등에서 우위에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자신감을 실력으로 뒷받침하는 것은 엔비디아의 눈부신 도약이다. 엔비디아는 세계 시장에서 AI 개발에 쓰이는 그래픽처리장치(GPU) 중 90% 이상을 공급하고 있으며 주가는 올해 180% 넘게 폭등했다. 반도체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시가총액 1조 달러를 넘는 기업이 됐다. 심각한 GPU 품귀현상으로 인해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가 현시점에서 GPU는 마약보다 구하기 훨씬 어렵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전 세계가 모두 원하는 첨단 반도체 칩을 오로지 대만업체만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런 자부심은 평범한 대만사람의 마음속까지 들어간 것 같다. 우연히 행사장에 엔비디아 젠슨황 회장이 입장하는 모습을 눈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 순간 몰려든 취재진 뒤에서 보고 있는 관람객들이 마치 아이돌 스타를 보는 듯 환호했다. 일반적인 행사 VIP와는 다르게 뭔가 큰 일을 해낸 귀빈을 대우하는 분위기였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솟구치는 대만의 힘을 구성하는 요소다.


엔비디아는 5월 29일, 고성능 인공지능 처리를 위한 하드웨어 제품인 DGX GH200를 발표했다. GH200 칩 256개를 결합해 단일 그래픽처리장치(GPU)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한 슈퍼컴퓨터로써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구글클라우드 등이 이 고객사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밖에도 광고 제작용 생성형 인공지능 앱, 비디오게임 개발에 생성형 인공지능을 적용한 엔비디아 에이스 플랫폼도 선보였다.

다양한 테마에 비해 전체적으로 인공지능에 관련된 제품이 상당히 많았다. 개인용부터 산업용까지 다양한 하드웨어 가운데 상당수가 인공지능을 지향한 제품이었다. ASUS, MSI 등 경쟁업체의 부스가 비교적 가까운 곳에 집결해 있어 특정 분야를 집중적으로 보려는 관람객의 동선을 배려하는 점도 좋았다.


여기에 전통적인 PC 부품 업체의 전시도 적극적이었다. 다양한 색깔과 기능을 가진 공랭쿨러, 수랭 시스템이 케이스와 함께 전시되었는데, 아예 그 케이스도 매우 독창적이고 멋진 형태로 만들어 전시했다. 여기에 파워서플라이, 고성능 오버클럭램, 고해상도와 고주사율 모니터까지 있었다. 심지어 게이밍 쪽에서는 이제는 사장됐다고 생각했던 3D 입체영상 모니터를 안경 없이 볼 수 있는 시차방벽 방식으로 구현해서 내놓기도 했다. 이런 모든 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건 아마도 대만이 유일하지 않을까.

물론 이 대만의 힘에도 한계는 있었다. 이번 행사에서 쏟아진 수많은 전시제품이 주로 하드웨어에 머물고 있다는 건 대만 ICT산업이 가진 아쉬움도 잘 나타내 준다.

현재 전 세계 ICT 산업 가운데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가진 건 운영체제, 클라우드, 앱 등의 소프트웨어이며 이 분야는 미국 업체의 독무대다. 하드웨어에서도 가장 기술집약적인 CPU는 역시 미국 업체인 인텔과 ARM의 입지가 굳건하다.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가장 누리는 메모리와 낸드플래시는 한국업체가 차지했다.


대만이 가진 건 그 나머지 분야인데 그래픽 칩을 제외하면 대부분 부가가치가 낮고 독점적인 기술이 존재하지 않는 분야다. 양적인 화려함과 별개로 상대적인 노동집약적 제품이 많다는 그림자는 분명히 존재한다. 나중에 중국, 인도 등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하면 대만 업체가 밀릴 가능성도 크다.

또한 행사 전체적으로 개인용 PC관련 부품이 많이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B2B(기업용) 서버 관련으로 흐름이 옮겨간 듯하다. 특히 MSI, ASUS, 애즈락 부스 등을 둘러보니 이런 추세가 많이 보였다.

왜 이렇게 됐을까? 개인용 PC시장이 쇠퇴기를 맞은 것으로는 볼 수 없다. 코로나 시기에 비대면을 위한 대비로 개인들이 PC부품을 이미 많이 사서 수요가 주춤한 것이라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부품 수명 주기가 오면 다시 개인의 교체 수요가 살아날 것이며 시장이 관련 인프라 정비하는 과정이라 본다. 정비가 끝나면 업그레이드에 대한 개인 수요가 다시 부활할 것이라 전망된다.

이번 컴퓨텍스 2023은 매우 훌륭하고, 부러운 행사였다. 한국은 삼성, LG를 비롯해 굵직한 대기업 몇몇의 참가여부에 따라 행사장 규모와 열기가 너무도 차이 난다. 반면에 많은 중견 업체들이 다양한 분야의 제품을 자신 있게 내놓은 자리. 관람객이 매우 기뻐하며 축제처럼 즐기는 자리였다. 우리도 이처럼 '한국의 힘'을 제대로 느껴볼 축제 같은 행사가 생기길 바란다.


By 안병도 에디터 Byeongdo.An@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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