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NETFLIX]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 김신강
  • 승인 2020.10.3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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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볼까?] 넷플릭스 -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과거 같은 현재, 현재 같은 과거의 이야기




[2020년 10월 30일] - 전 세계가 유례없는 ‘가짜뉴스’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가짜뉴스를 이용해 집단의 결속력과 행동력을 높이는 세력도 있다. 제프 올롭스키 감독의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에는 구글, 페이스북의 전, 현직 간부와 근로자들이 출연해 소셜 네트워크 중독성의 위험성과 그들로 비롯된 가짜뉴스의 엄청난 파급력과 전파력을 고발한 바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양은 지구 평면설을 믿는 사람들로 골치가 아프다. 이 어처구니없는 가짜뉴스를 증명하겠다고 2018년 3월에는 마이크 휴즈라는 사람이 미국 캘리포니아주 모하비 사막에서 제작한 로켓을 타고 570m 상공까지 올라간 적도 있다. 지구가 둥글다는 주장에는 음모가 있으며 실제로는 원반처럼 생겼다는 것이다.

‘둥근 지구가 자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200개 증거들’이라는 유튜브 영상은 이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지목되고 있는데, 실제로 ‘평평한 지구 학회’에는 여전히 수많은 회원이 가입되어 있다. NBA의 유명 선수 카이리 어빙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무한도전’에 출연해 한국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스테판 커리는 4일 만에 농담이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1969년 아폴로 11호의 인류 최초 달 착륙에 대해 믿지 않는다고 말해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대부분의 가짜 뉴스에는 의도가 있다. 거짓 프레임을 만들어 선거나 이슈에서 사람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믿게 하여 원하는 목적을 얻고자 함이다. 요즘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 다양한 경로로 가짜뉴스를 생산하여 파급하기 좋은 세상이지만, 그만큼 ‘양식 있는’ 이들이 분별 있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대응하는 콘텐츠도 많다.

유사한 콘텐츠를 계속해서 보여주는 알고리즘 때문에 구독자들의 눈과 귀를 가린다는 비판도 많지만, 그래도 진짜 뉴스를 알려주려는 노력을 할 수 있는 세상이다. 여전히 ‘광주는 폭동이다.’라는 주장을 하고 누군가를 그것을 놀이로 삼고, 누군가는 진짜 그렇다고 믿기도 한다. 일베를 비롯한 극단적 세력들은 온갖 가짜뉴스를 생산하고 뿌린다.

과거에는 이런 가짜뉴스를 헤게모니를 가진 정부나 언론이 마음먹고 생산하면 일반 국민은 진실을 알 길이 없었다.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 최저 수준인 우리나라의 경우 대기업이나 국회의원을 보호하는 투의 뉴스를 내보내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습관이 생겼다.

미국 대선이 10일도 남지 않은 지금, 지난 7일 개봉하고 16일 넷플릭스를 통해 공개된 현존하는 최고의 이야기꾼 아론 소킨의 신작,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은 다분히 의도를 품고 있다. ‘소셜 네트워크’, ‘머니볼’, ‘뉴스룸’, ‘웨스트 윙’, ‘머니볼’, ‘스티브 잡스’ 등 지금까지도 다 회차 관람을 하는 마니아들이 공고한 아론 소킨의 대표작들은 작품들의 면면에서 볼 수 있듯이 대부분 실화를 기반으로 하거나 실제로 있음 직한 리얼리즘을 추구한다.

배우들은 엄청난 대사량을 소화하며 상황을 사실적으로 생생하게 관객에게 전달한다. 아론 소킨의 작품들이 관객들의 지지를 받는 이유는 정말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생동감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영화의 탈을 쓴 다큐멘터리라는 소리를 듣는 것도 빈정거림보다는 아론 소킨의 강박에 가까운 사실적 표현에 대한 찬사다.

트라이얼 오브 더 시키고 7의 시작은 원래 스티븐 스필버그였다. 개봉 목표 시점도 버락 오바마를 미국 사상 첫 흑인 대통령으로 만들어줬던 2008년 대선 이전이었는데, 당시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떠올린 후 각본을 의뢰했던 대상이 아론 소킨이었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작년에야 촬영에 들어갔고, 감독 역시 소킨이 맡기로 했다. 본래 파라마운트 픽처스를 통해 올해 개봉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사태로 넷플릭스 공개로 변경됐다. 서울 일부 극장에서 상영 중이긴 하지만, 넷플릭스는 이래저래 이 팬데믹의 최대 수혜자임이 틀림없다.

영화의 배경은 1968년 미국 시카고다. 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비폭력 반전 시위를 진행한 이들을 불법 시위라 규정하고 반드시 유죄 판결을 받아내겠다는 검찰 측과 시위 주동자 7명의 팽팽한 대립을 담은 실제 재판을 소재로 삼은 실화 기반의 작품이다. 미국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재판 가운데 하나로 기록된 재판이기도 하다.

소킨의 명성에 부합하는 대배우들의 향연이다. ‘신비한 동물 사전’, ‘대니쉬 걸’, ‘사랑에 대한 모든 것’ 등에서 매력적이면서도 풍성한 연기를 보여줬던 아카데미 수상 배우 에디 레드메인이 톰 헤이든 역으로 중심을 잡는다. ‘보랏’으로 잘 알려진 샤샤 바론 코헨, ‘500일의 썸머’, ‘인셉션’ 등으로 수많은 국내 팬을 보유한 조셉 고든레빗, ‘버드맨’의 마이클 키튼 등 면면이 화려하다.

시위 주동자 7명의 반전 시위는 비록 법원의 허가를 받지는 못했지만, 처음부터 비폭력을 내세우고 춤과 노래가 가득한 경쾌한 분위기의 집회였다. 시위대의 흥분을 유도한 경찰이 사실을 숨긴 채 10년 형을 받게 하겠다고 골몰하는 모습은 흡사 군사 정권 시절의 민주화 투쟁이 오버랩된다. 물론 우리나라에 비하면 말로 싸우니까 훨씬 인간적이다.

가장 정치적으로 혼란스러운 시기를 다루고 있는 만큼 2020년 오늘날의 미국 상황과 놀랍도록 유사하다는 시선이 많다. 현재 미국은 내전이 일어나지 않는 게 신기하다는 이야기가 될 정도로 진영 간의 갈등이 극에 달해 있다. 인종 갈등과 세대 갈등, 심지어 남녀 갈등에 이르기까지 대립하지 않는 분야가 없다.

2020년 여름, 블랙 라이브즈 매터 운동과 시위가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다. 1968년 재판 중간에도 한 명의 흑인이 경찰들에게 살해당했는데, 2020년에도 조지 플로이드, 레이샤드 브룩스, 브리아나 테일러 등 수많은 사람이 50년 전과 유사하게 비극적인 최후를 맞았다.

트럼프 당선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실제로 2016년 이후 아시아계 여성들의 미국 내 취업률이 현격히 떨어졌다는 보고도 있다. 우리나라 역시 평화적 촛불시위에 따른 정권 교체를 했음에도 진영 간의 갈등이 유례없이 심하지만, 미국의 상황은 훨씬 더 폭력적이고 극단적이기 때문에 전 세계가 우려하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은 이를 부추긴다. 아론 소킨은 “시대상을 반영하기 위해 각본을 수정한 게 아니라 각본에 표현한 대로 시대가 퇴화했다”며 현재의 미국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소킨의 작품 대부분이 그렇지만 상업적으로 재미있지는 않다. 그러나 손동작, 표정, 대사의 어감 하나까지 디테일하게 고민하는 그의 스토리텔링은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하다. 한국 사람으로서 전혀 알지도 못했던 수십 년 전 재판에 대한 깊이 있는 시청각 교육을 받는 기분이다. 가장 재미없는 이야기도 가장 흥미롭게 만들 수 있다는 찬사를 받는 소킨의 실력은 이 영화에서 십분 발휘된다. 현재의 미국 상황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며 투표권도 없는 한국인이 미국을 걱정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당시 실제 시위의 영상을 중간중간 삽입하고, 배우들은 높은 싱크로율로 실제 인물들을 연기해 뛰어난 현장감을 선사한다. 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택시운전사’나 ‘변호인’, ‘1987’ 등을 보면서도 스토리의 힘으로 작품에 집중할 수 있듯이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 역시 미국의 역사를 잘 알지 못해도 보편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정서를 영리하게 파고들고 있다.

화려한 배우들을 보고 주말의 평화로운 영화 관람을 기대하고 봤다간 마음이 다소 무거워질 수 있다. 그런데도 한 시민으로서 깨어있어야 한다는 자각, 다른 나라의 귀퉁이 역사를 배우는 지적 즐거움이 쏠쏠한 즐거움을 준다. 분명히 정상적으로 개봉했으면 우리나라에선 크게 망했을 영화다. 그러나 향후 매번 중요한 선거나 정치적 이슈가 활개를 치면 문득 생각나 곱씹게 될 작품임이 틀림없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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