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 에놀라 홈즈
[NETFLIX] 에놀라 홈즈
  • 김신강
  • 승인 2020.09.29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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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에 뭐볼까?] 넷플릭스 - 에놀라 홈즈

여성 오락 영화 연출의 시대적 표본을 보여주다.




[2020년 09월 29일] - 비대면 시대의 최대 수혜자 중 하나라 할 수 있는 넷플릭스. 지난 1/4분기 전 세계에서 1,577만 명의 신규 가입자를 확보하며 전년 동기간 대비 30% 급증했다. 역대 최대 규모이며, 추정 실적은 57억 7천만 달러에 달한다. 부인할 수 없는 ‘코로나19 효과’다.

우리나라는 하루 뒤인 30일 자로 디즈니 콘텐츠들의 스트리밍이 종료되는 악재가 있지만, 사실 넷플릭스를 지탱하는 힘은 오리지널 시리즈에 있다. 3/4분기에 접어들며 오리지널 시리즈도 공격적으로 공개하고 있는데, 정세랑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보건 교사 안은영’, 아카데미 작품상에 빛나는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의 메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호러물 ‘래치드’, 가장 ‘스파이더맨’다웠다고 평가받는 톰 홀랜드 주연의 ‘악마는 사라지지 않는다’ 등이 최근 공개되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 중 현재 가장 최고의 화제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지난 23일 공개된 ‘에놀라 홈즈’라는 데 큰 이견이 없다. 전 세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 중 하나인 셜록 홈스의 여동생이라는 설정, 넷플릭스 역대 최대 흥행작 ‘기묘한 이야기’의 히로인 밀리 바비 브라운이 주인공을 맡았다는 점, ‘킬링 이브’, ‘플리백’ 등 선이 굵고 개성 강한 여성 영화 히트작을 연이어 터뜨린 해리 브래드비어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점 등 수많은 성공 요소를 담고 있다.

본래 워너 브라더스를 통해 개봉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 상황이 계속 악화하며 넷플릭스가 배급권을 따냈다. OTT 서비스의 콘텐츠 순위를 제공하는 플릭스패트롤에 따르면 에놀라 홈즈는 공개 첫날부터 26일까지 일 연속 전 세계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셜록 홈즈에게 여동생이 있고 그 여동생이 셜록과 똑같은 성격을 가졌다면 어떨까?’ 하는 발상에서 시작된 작품이다. 선거법 개정안을 앞두고 여성 참정권이 이슈의 중심에 있었던 영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16번째 생일에 홀연히 사라진 엄마를 찾아 런던으로 떠나는 소녀의 이야기다. 홀몸으로 에놀라를 양육한 엄마 유도리아 홈즈는 당대 전형적인 여성 교육을 탈피하고 다양한 가르침으로 주도적이고 자주적인 여성으로 키워낸다.

기본적으로 페미니즘과 다양성을 무게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넷플릭스’다운’ 가치관과 정서를 깔고 있지만, 이를 성(性) 대결 구도나 피해 의식을 드러내는 방식이 아닌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내고 있다. 파트너 역할을 맡은 튜크스베리 백작, 오빠인 셜록과 동일한 시선에서 주고받는 도움이 자연스럽고, 클리셰 가득한 의상인 코르셋을 방어무기로 사용하는 등 기존의 틀은 깨면서도 불편하지 않게 끌어가는 영민한 연출을 보여준다.

본래 기획 의도와는 많이 달라진 부분도 있다. 셜록 홈스의 여동생이고 셜록 홈스도 등장하지만 본 작품은 추리물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단어 퍼즐을 즐기는 엄마의 힌트를 통해 엄마가 떠난 장소를 추리하는 정도의 ‘머리 좋은’ 모습이 사실상 전부고, 에놀라가 다양한 고비를 넘기며 성인으로 자라는 성장물에 가깝다. 여자 버전 셜록이 사건을 멋지게 추리하고 해결하며, 다양한 인물의 갈등과 음모가 상황을 미궁으로 이끄는 분위기를 상상하고 이 작품을 보면 무조건 실망하게 되어 있다.

공존의 히트작 ‘셜록’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길들여놓은 소시오패스적 캐릭터가 만드는 매력은 온데간데없고, 지나치게 인간적이다. 심지어 셜록도 너무나 친절하다. 실제로 셜록이 원작 캐릭터와 너무 무관하다는 이유로 아서 코일 재단에 소송을 당하기도 했다. 왓슨이 아예 등장하지 않는 것은 특히 아쉬운 부분이다.

그런데도 에놀라 홈즈가 남녀 모두에게 좋은 평가를 받는 데는 밀리 바비 브라운의 ‘사랑스러우면서도 압도적인’ 연기력에 있다. 기묘한 이야기의 ‘일레븐’ 역시 중성적이면서도 어딘가 애처롭고 사랑스러운 역할을 맞춤옷을 입은 것처럼 소화한 그녀는 이번 작품에도 예의 그 다면적인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끊임없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상황 설명을 하는 모습은 극의 흐름을 깨거나 막지 않고 관객이 기쁜 맘으로 영화에 참여하는 기분을 들게 한다.

이런 방식의 연출은 보통은 관객과 작품 사이의 거리 두기를 통해 관객이 상황을 보다 객관적으로 보게 하는 의도를 갖는데, 에놀라의 끊임없는 카메라 눈 맞춤은 당대 시대상과 에놀라의 현대적 캐릭터 사이의 괴리감을 자연스럽게 녹여 보는 이들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추리적 요소는 적지만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들어 지루할 새가 없고 현실감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에놀라는 주체적이고 적극적인 캐릭터지만 겁도 많고 설레는 감정 앞에 수줍게 얼굴을 붉힌다. 튜크스베리, 셜록, 마이크로프트 등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원작에 비해 다소 작위적이고 가공된 면이 있지만 절대 선, 절대 악과 같은 단순하고 평면적인 캐릭터가 아니라 상황 앞에 유연하고 설득 적이다.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92%를 획득한 것은에놀라 홈즈가 내러티브를 풀어가는 ‘2020년식 신선함’을 영리하게 풀어냈음을 증명한다. 작년부터 촉발된 미투 운동 이후 지나치게 의식적이고 억지로 끼워 맞춘 듯한, ‘피씨함(정치적 올바름)’을 강요받은 듯한 작품이 심심찮게 등장한 것이 사실이다.

에놀라 홈즈는 시대적 흐름을 정면으로 타고 가지만 노련하다. 여성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기면서도 남성들에게 오락적 재미를 놓치지 않도록 배려한 대중영화의 모범적 가이드를 보여준다. 아쉬운 면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에놀라 홈즈라는 개성 있고 창조적인 캐릭터를 탄생시켰다는 점에서 멋진 출발이 됐다.

브래드비어 감독은 작품이 공개되자마자 후속작 제작에 대한 희망을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셜록보다 똑똑한 셜록’이란 포기하기 어려운 설정은 분명 확장성이 뛰어나다. 시대정신과 부합하는 부분도 있다. 이번에놀라 홈즈가 불과 16살에 불과한 밀리 바비 브라운을 추리 무대에 소개하는 자리였다면, 후속작은 본격적인 미스터리 코드를 담아내 놀라의 매력적인 캐릭터로 풀어내는 방식이 될 수 있다. 아주 오랜만에 대체 불가능한 스타 캐릭터가 등장했다. 다양한 버전에서 셜록과 에놀라가 왓슨 못지않은 시너지 효과를 내는 모습이 기대된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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