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12, 충전기 없애고 혁신을 외치다
아이폰 12, 충전기 없애고 혁신을 외치다
  • 김신강
  • 승인 2020.10.16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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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 신제품 발표…새 아이폰 4종 공개

아이폰 최초의 5G 적용…깜짝 발표 없어




[2020년 10월 15일] - 지난 13일(현지 시각) 애플은 신제품 이벤트를 열고 아이폰12 시리즈 4종과 스마트홈 스피커인 홈팟 미니를 공개했다. 9월 아이패드, 애플워치 발표 때와 마찬가지로 비대면 녹화중계로 약 1시간 남짓한 발표 시간으로 이뤄졌다.

신제품 발표 때마다 철통 보안에 민감했던 스티브 잡스 사후 애플의 발표는 사실 매번 ‘김빠진’ 행사로 진행되는 것이 사실이다. 루머의 정확도(?)는 날로 적중도가 높아져 가고 있고, 주력 상품이 아닌 ‘완전히 새로운’ 제품군의 루머는 팬들의 추정이나 바람이 만들어낸 허상으로 끝나는 역사의 반복.

지난 기사에서 다뤘던 아이폰에 대한 루머는 사실상 100% 일치했다.

‘초고속으로 만나요’라는 슬로건에 맞게 5G로 출시된다. 애플은 미국 1위 통신사 버라이즌의 한스 베스트버그 회장 겸 CEO까지 불러가며 5G가 얼마나 위대한 시대를 불러올지에 대해 상당 시간을 할애했다. 1년 넘게 답답한 5G 서비스로 원성이 자자한 우리나라로서는 생경한 광경이었다. 미국 주요 대도시만 밀리미터웨이브(mmWave) 안테나를 지원하는 부분을 강조하면서 ‘그들만의 축제’ 같은 인상을 짙게 풍겼다.

모델은 5.4인치 아이폰12 미니, 6.1인치 아이폰12 맥스, 6.1인치 아이폰12 프로, 6.7인치 아이폰12 프로맥스의 4종류로 모델명, 화면 크기 모두 정확히 루머와 일치했다. 심지어 아이폰12, 아이폰12 프로는 10월, 미니와 프로맥스는 11월에 출시할 것이라는 전망도 모두 들어맞았다.


컬러도 예상대로 아이폰12 미니와 아이폰12는 블랙, 화이트, 레드, 그린, 블루의 5가지, 아이폰11프로와 아이폰12 프로맥스는 골드, 실버, 그라파이트, 블루의 4가지 컬러로 출시된다. 이쯤 되면 이제 애플 발표는 알고 있는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에 지나지 않는 듯하다.

냉정히 말해 돌비 비전 방식으로 동영상을 촬영할 수 있고, 더 빠른 칩을 사용했다는 것 외에 아이폰11과 다른 점은 디자인 외에는 사실상 없다. 오랫동안 고수해온 끝이 둥그런 디자인을 버리고 많은 이들이 이른바 아이폰의 ‘리즈 시절’로 꼽는 아이폰4 당시를 연상시키는 각진 디자인으로 돌아왔다.


유일하게 틀린 루머는 우리나라가 처음으로 1차 출시국으로 들어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아이폰12, 아이폰12 프로는 10월 23일, 아이폰12 미니와 아이폰12 프로맥스는 11월 13일이 1차 출시일로 정해졌는데, 우리나라는 인도와 함께 1주일 더딘 30일에 출시될 예정이다. 사실상 1.5차 출시국이라고 볼 수 있는데, 과거 ‘담달폰’이라는 오명을 썼던 것을 돌이켜 보면 현저히 빨라진 것은 사실이다.

과거 매킨토시 사용자들의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MagSafe, 즉 자석으로 충전하는 방식이 돌아왔다. 루머대로 아이폰12만을 위한 무선 충전기가 공개됐는데, 애플워치의 그것과 유사한 모양으로 디자인됐다. 자석 방식을 이용해 탈부착이 가능한 카드 수납 케이스를 발표했고, 그것도 무려 7만 5천 원에 공개했다.

경쟁사들의 제품을 공식 홈페이지에서 모두 제거하며 이번 발표에 가장 기대를 모았던 무선 헤드폰은 빠졌다. 실리콘맥 등 대부분의 ‘혹시나’ 했던 새로운 제품군은 사실상 전혀 공개되지 않았다. 기존에 이미 있었던 홈팟 스피커의 미니 버전이 출시됐을 뿐이다. 심지어 홈팟은 한국에는 정식 출시되지 않은 제품이라 의미도 없다.

가장 충격적인 혁신은 ‘설마’ 했던 충전기를 정말로 없애버린 것이다.

기본제공 되던 라이트닝 이어폰도 주지 않는다. 100만 원 전후하는 새 휴대폰을 샀는데 충전 어댑터를 주지 않는 당당함을 보여줬다(애플은 이것을 ‘용기’라고 표현했다). 애플도 그냥 안 주기는 내심 찝찝했는지 발표 중 3분여를 할애해가며 탄소 중립의 당위성을 운운하며 충전 어댑터를 없애버린 것을 자랑스러운 듯 설명했다.

설명하는 리사 부사장 뒤로 보이는 푸르른 나무와 작위적인 무지개 장식은 실소를 자아냈다. 이미 7억 개의 기본 이어폰을 제공했고, 20억 개의 애플 어댑터를 제공했기 때문에 소중한 자원을 위해 없애기로 했다는 것이다. 마치 지금껏 무료로 제공해 준 것처럼.

처음으로 아이폰을 경험하는 이들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애플은 이 발표 직후 20W USB-C 전원 어댑터를 2만 5천 원에 따로 살 수 있도록 친절히 배려했다. 이른바 ‘마진 쿡’이라고 불리며 창조적으로 고객의 주머니를 털어가는 팀 쿡 체제의 뻔뻔한 자신감이 선을 넘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애플의 이번 환경 운운 발표가 어처구니없는 이유는 그들이 이번에 주지 않는 USB-C 전원 어댑터는 작년 아이폰11 때 처음으로 제공했던 어댑터라는 점이다. 애플은 매우 오랫동안 5W 10W 충전 어댑터를 제공하며 고속 충전에 인색하다는 평을 들어왔다(삼성은 25W를 지원한 지 오래다).

스마트폰의 스펙이 점점 높아지면서 도저히 기존 충전기로는 답답해지자 울며 겨자 먹기로 작년에 처음으로 18w 충전기를 제공해 준 애플이다. 그것마저 주고 보니 아까웠는지 올해는 아예 주지 않기로 한 것이다. 애플워치에서 충전 어댑터를 빼 버리면서 아이폰에서도 없앨 것이라는 소문은 무성했지만,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이다.

정말 애플이 환경이 그렇게 소중해서 어댑터를 주지 않는 것이라면 이번 애플워치 에르메스 버전에 버젓이 제공하고 있는 어댑터는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아이폰12 전에 발표한 아이패드에는 왜 어댑터를 제공하는지 모를 일이다.

잡스 사후 10여 년 동안 에어팟 프로 외에 사실상 애플에서 새롭게 추가한 카테고리는 없다.

애플 CEO의 손끝에서 생각지도 못한 새로운 제품이 나타나고 열광했던 ‘쇼’가 사라진 지 너무 오래됐다. 그런데도 여전히 애플은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기업이고 잡스 없이 만들어진 7개의 새로운 아이폰은 매번 대성공을 거두고 있다. 그런 점에서 팀 쿡은 뛰어난 경영인임에는 틀림없는 듯하다.

삼성이 폰을 옆으로 접고 앞으로 접고, LG가 폰을 겹치는 온갖 새로운 짓을 해도 별로 애플은 관심이 없다. 잡스 시절이라면 ‘잡스는 조잡하다고 싫어할 거야. 더 멋진 것을 보여주겠지’하는 기대가 있었겠지만, 지금은 애플 팬들조차 그런 기대는 없다. 그저 유려하고 깔끔한, 군더더기 없는 디자인에 묵묵히 지지를 보내는 중이다.


애플은 삼성 대비 낮은 글로벌 시장점유율을 창조적인 마진으로 극복해 뛰어난 재정 건전성을 확보하고 있다. 팬들의 충성도가 높아 마케팅비의 효율성도 높다. 애플은 매번 발표에서 전작보다 얼마나 뛰어난지를 설명하지만, 점점 그들도 속도와 스펙 외에 할 말이 없어져 가는 듯하다.

궁색한 내용을 화려한 영상으로 뒤덮은 지 오래지만, 그런데도 기본기에 충실하고 아직 애플만큼 감성적으로 세련된 커뮤니케이션 하는 경쟁사가 없다는 것은 그들의 성공을 여전히 의심하지 않게 만드는 힘이다. 이번에도 혁신은 없었다.

주가는 내려갔다. 이제는 기대가 되지 않는 수준을 넘어 예상되고 또 그대로 들어맞는다. 그런데도 신제품이 나오면 사고 싶다. 애플은 이런 고객의 마음을 잘 안다. 충전기까지 뺏어가도 이번 아이폰도 엄청나게 잘 팔릴 거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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