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으로 만나는 꽃게랑, 마실 수 있는 말표 구두약
옷으로 만나는 꽃게랑, 마실 수 있는 말표 구두약
  • 김신강
  • 승인 2020.10.28 0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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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을 깨뜨려 전통을 지키다.

치열한 2020 시장 생존기, 소비를 자극하라!




[2020년 10월 28일] - ‘4P 전략’에 대해 들어보았는가? 꼭 경영학이나 광고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도 한 번쯤은 지나가듯 누구나 한 번쯤은 접해봤을 용어다. 지금도 마케팅 원론 수업에서 마치 한글이나 알파벳처럼 기본적으로 가르치는 이론이다. 무려 60년 전에 나온 Product(제품), Price(가격), Place(장소), Promotion(촉진) 전략이 MZ 시대에 이르도록 살아서 교육되고 있다는 건 어쩌면 너무 게으르지 않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장의 헤게모니가 완전히 온라인으로 넘어간 시대에 장소라니, 촉진이라니.

4P를 배우고 나면 ‘꽤 세련된’ 이론인 것처럼 뒤이어 배우게 되는 것이 4C다. Consumer(고객), Cost(비용), Convenience(유통), Communication(커뮤니케이션) 전략인데, 생산자 중심의 낡은 4P 사고를 버리고 소비자 중심의 새로운 4C 사고를 가져야 한다는 이론이다. 이 시대에도 적용이 아주 안 되는 얘기는 아니지만, 사실 2020년을 사는 우리에겐 너무 당연한 소리라서 비싼 돈 주고 강의실에 앉아 들을 만한 교육인지는 개인적으로 의문스럽다.

그렇게 중요한 ‘척’ 하는 4C도 1993년에 나온 이론이다. 30년이 다 되어간다는 소리다.

4C 이론을 기반으로 발전한 마케팅 개념이 IMC(integrated Marketing Communication), 즉 ‘통합된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다. 이 이론은 2000년대 중반부터 비교적 최근까지 마케팅의 바이블과 같은 이론 중 하나였다. 자사의 브랜드나 채널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상호작용은 늘 일관되고 하나의 공통된 목표를 향해 하나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어 인스타그램에서는 BTS의 멤버가 ”10대들을 위한 최고의 제품!”이라고 외치고 있는데 페이스북에서는 백발의 신사가 나와 “온 가족에게 어울리는 훌륭한 제품!”이라고 홍보하고 있다면 IMC적 관점에서는 최악의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이다.

IMC는 여전히 유효한 이론이다. 하나의 브랜드가 태어나 고객의 마음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정해진 콘셉트를 기반으로 다양한 채널과 고객별 특성에 맞게, 하지만 일관된 목표를 갖고 전술을 실행해야 한다. 포털 사이트에 ‘IMC’라고 검색만 해 봐도 수많은 마케팅 회사가 튀어나온다.

그러나 IMC 이론이 태어난 1993년과 지금의 2020년의 마케팅 환경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바로 ‘속도’다. 브랜드가 너무 쉽게 늙는다. 브랜드의 수명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짧아졌다. 우후죽순 생겨나던 대형 커피 프랜차이즈는 이제 대부분 소멸하고 사실상 스타벅스 하나만 승승장구하고 있다. 구찌, 버버리, 지방시 등 명품 패션 브랜드도 2000년대 급격히 위축되다가 스트리트 패션을 입고 겨우 살아났다. 허머, 사브, 머큐리 등 세상을 호령하던 자동차 브랜드들은 역사 속의 이름이 됐다.

소셜 네트워크가 세상의 중심이 되고 모바일이 의사소통의 주요 도구가 되면서 MZ 세대는 극단적으로 재미를 추구하고 싫증을 쉽게 느끼는 성향을 가진다. 넘쳐나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첫술에 배부르지 않으면’ 바로 소멸을 의미하는 시대가 됐다.

변화하는 소비자들의 성향은 마케팅 전략에도 변화를 요구했다. ‘펀슈머(Fun+Consumer)’라는 신조어가 등장했고 온라인에 맞게 다양한 인격, 즉 멀티 페르소나를 갖춘 브랜드들이 흥미를 끌기 시작했다. 옛 문화를 오늘날에 맞게 변주하고 의외성을 부여하는 전략은 기존 브랜드들에 기회의 장이 됐다.

빙그레 꼬뜨게랑, 곰표 패딩, 말표 흑맥주 … 옷 갈아입은 레트로

최근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누가 뭐래도 빙그레다. 빙그레는 사실 80년대에조차 좀 오래된 듯한 느낌이 드는 브랜드였다. 전설의 프로야구팀 빙그레 이글스가 한화에 넘어갈 때는 어린 마음에 ‘아, 빙그레가 망했나 보다’ 막연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빙그레가 10·20세대에게 가장 핫한 회사가 되게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34살짜리 과자 ‘꽃게랑’이었다.


지난 7월 7일, 빙그레는 패션 브랜드 ‘꼬뜨게랑’을 만들어 출시한다고 밝혔다. 꽃게랑을 의미 없는 프랑스식 발음으로 바꾼 것이었다. ‘무려’ 지코를 모델로 내세워 가운, 셔츠, 티셔츠, 가방 등을 정말 제대로 출시했다. 꽃게 무늬를 마치 루이비통이나 펜디의 모노그램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디자인으로 표현한 이 제품들은 한정 판매로 내놓자마자 이틀 만에 준비한 모든 제품이 팔려나갔다.

빙그레의 공식 인스타그램은 빙그레의 식음료로 온몸을 도배한 ‘빙그레우스’라는 캐릭터가 등장해 ‘잘생겼지만 우스꽝스러운’ 매력을 뽐내며 빙그레를 다양한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팔로워는 15만 명이 넘는다. 국내 식품회사 중 가장 팔로워가 많다. ‘빙그레 TV’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빙그레 메이커를 위하여’라는 제목의 영상은 업로드 두 달 만에 조회 수가 650만을 넘겼다. 이 영상에 나온 음악은 사람들의 요청으로 음원까지 공개 배포됐다. ‘덕질하는’ 팬이 많아지면 브랜드의 힘은 당연히 강해질 수밖에 없다.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직접적으로 광고하는 대신 캐릭터의 감성을 팔아 아이스크림이나 과자를 사게 만들겠다는 신박한 전략이 먹혀들고 있다. 과거의 고리타분한 이미지, 나아가 아예 이미지가 없다시피 했던 빙그레는 그렇게 핫한 브랜드가 됐다.

이제는 뉴트로 브랜드의 대명사가 된 ‘곰표’도 빼놓을 수 없다. 곰표는 무려 68년 전 만들어진 회사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다. 곰표는 작년부터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MZ 세대 상당수는 곰표를 재미있는 패션 브랜드로 알고 있을 정도로 불과 2년 만에 브랜드가 얼마나 젊어졌는지 알 수 있다.

4XR 곰표 패딩, CU 곰표 오리지널 팝콘, 애경 곰표 2080 치약, 스와니코코 곰표 밀가루 쿠션 등 과거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제품들을 쏟아내고 있다. 밀가루 회사라는 아이덴티티만 생각했다면 실행할 수 없을 아이디어다. 2020년식 IMC는 이렇게 시대와 타깃에 맞게 변주되고 있다.

곰표와의 콜라보레이션에 고무된 CU는 다음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유사한 발음에 착안해 ‘말표’와 만난 CU는 말표산업의 말표 구두약, 맥주 제조사 스퀴즈 브루어리와 협업해 지난 8일 ‘말표 흑맥주’를 출시했다. 말표 구두약은 명실공히 우리나라 압도적인 판매 1위의 구두약이지만 군대 내무반에 들어가거나 길가의 구두닦이 아저씨를 만나지 않으면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케케묵은 느낌이 있다.

살아가면서 한 번도 떠올려보지 않을 수도 있는 브랜드, 그런데도 모르는 사람은 없는 브랜드가 바로 말표다. “아니, 구두약에서 맥주라니?” 하는 의외성 자체가 재미를 부르고 버즈(입소문)를 부른다. 최초의 아이디어는 말표의 것이 아니겠지만 말표는 그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한방에 젊어졌고 사람들의 머릿속에 떠오르게 됐다.

전통적인 브랜드, 나아가 ‘낡고 늙은’ 브랜드에는 지금 시대가 분명히 기회의 장이다. 을지로가 힙지로가 되고, 옛날 교실의 추억인 우유 상자가 고가에 팔리고 있을 만큼 1020에게 옛날 문화는 완전히 새롭고 완전히 신선한 영역이다. 당연하다. 어릴 때 본 적도 없는 물건이니까. 구태의연한 마케팅 이론의 옷을 벗어 던질 때다. 분명히 이유도 논리도 맥락도 없이 이것저것 마구 붙이는 회사들이 쏟아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브랜드 간의 콜라보레이션에는 분명한 연결점이 있다. 곰표는 그들의 하얀 밀가루를 연상시킬 수 있는 하얀 패딩을 만들었고, 말표는 그들의 구두약을 떠올릴 수 있는 흑맥주를 만들었다. 의외성조차 치밀한 전략 위에 만들어진다. 브랜드는 끊임없이 젊어져야 생존할 수 있고 그래야 들려줄 이야기들도 풍성해진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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