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감경기 ‘급랭’ 경제적 코로나가 온다
체감경기 ‘급랭’ 경제적 코로나가 온다
  • 김신강
  • 승인 2020.09.23 02: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쪼그라드는 자영업, 폐업 쓰나미

대출에 쌈짓돈까지 다 끌어다 버티지만 … 악화 일로




[2020년 09월 23일] - “그냥 어렵다는 말로는 많이 부족해요. 집단적으로 멸망을 향해 가는 기분입니다.”
“사장님이 미안하다고 하는데 지금껏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더라고요.”


코로나19가 세계 경제에 직격탄을 날리고 자영업자 중심으로 요즘 이런 말들은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다. 홍대나 이태원, 강남역 등 젊은 층에 사랑받는 번화가는 한 집 걸러 한 집 ‘임대문의’ 안내가 붙어 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1997년 IMF 사태나 2008년 금융위기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때도 어렵다고는 했지만,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는 쉽게 드러나지 않았다. 과거의 위기는 정부나 은행 등 원망의 대상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보이지도 않는 바이러스 하나가 삶을 통째로 흔들고 있다. 말 없는 바이러스는 이 오랜 고통을 끝내줄 생각도 계획도 없어 보인다.

실업급여 신규 신청자가 매달 10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본격적인 확산 조짐을 보였던 2월부터 6개월 연속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은 빚으로 버티고 있다. 한국은행이 2일 발표한 ‘예금 취급기관 산업별 대출금’ 통계에 따르면 2/4분기 서비스업 대출금이 47조 2천억 원 증가해 1/4분기 대비 13조 이상 늘었다.

코로나가 금방 끝날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는 절망으로 변해가고 있다. 행정안전부 지방행정 인허가 데이터의 전국 190여 개 업종 사업체들의 폐업 현황은 6월 1만 4,145개, 7월 1만 4,502개에 달한다. 소상공인진흥공단이 밝힌 올 상반기 폐업지원금 신청자 수는 이미 작년 전체의 70%를 넘겼다.

결국 22일 국회는 7조 8천억 원 규모의 4차 추가경정예산안을 통과시켰다. 한 해에 4번의 추경이 편성된 것은 1961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지난 7월 3차 추경이 35조 규모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대적으로 작지만, 팬데믹이 불러온 위기감을 정부가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국민이 우려하는 지점은 지난 1, 2차 추경까지 더하면 이미 59조가 집행되었는데 자영업자들은 계속 망하고 실업자는 계속 쏟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전 국민 통신비 지원과 관련된 논란이 뜨거웠으나 결국 정부 원안대로 만 35~64세는 제외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고, “피해가 가장 큰 업종과 계층에 집중해 최대한 두텁게 지원하자”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도대로 선별적 지원에 집중하기로 했는데 기대와 우려가 공존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다.

자영업자들에 초점을 맞춘 소상공인 새희망자금의 경우 대상을 유흥업종과 콜라텍으로 확장했다. 단란주점과의 형평성 논란이 일었던 곳이다. 법인 택시 기사의 경우도 원칙적으로 소상공인에 해당하지는 않지만 지급하기로 했다. 아이 돌봄 지원금을 비롯한 이 자금들은 추석 전 지급이 예정되어 있다.

그러나 매출이 나오지 않음에도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버틸 수 있도록 돕는 긴급고용지원금, 폐업이나 실직 등으로 가족의 생계가 위협받는 이들을 위한 긴급 생계 지원비 등은 빨라야 11월이 되어야 지급이 가능할 전망이다. 이번 추경도 땜질식 단기 처방으로 그칠 것이라는 우려는 이 때문에 나온다.

지난 8월 전광훈 목사 집단으로부터 비롯된 집단 발병의 여파로 여전히 코로나 하루 확진자 수는 100명 내외로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10월 3일에는 여러 보수 단체들이 집회를 예정하고 있다. 정부는 단 한 건도 허용하지 않고 불법으로 다스리겠다는 입장이지만, 이미 8월을 겪은 국민들은 불안할 수밖에 없다.

팽배한 불안감이 지배하는 위축된 정서가 과거 IMF나 금융위기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지점이다. 과거에는 정부나 기업이 위기 극복을 위한 아젠다를 제시하고, 국민들이 함께 도와 위기를 극복해가는 로드맵이 있었다.

그러나 요즘처럼 위기의 원인이 전혀 사라지지 않고 기껏해야 마스크로 소극적 방어만 할 수 있는 상태에서는 경제적 회복에 대한 적극적인 독려나 새로운 성장동력에 대한 제시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어쩌면 당연하다.

세계 유수의 기관에서 백신 개발을 서두르고 있고 희망적인 소식들이 이따금 들려오지만, 이제는 누구나 코로나 이전의 사회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지금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나타나고 있는 집단적 무기력증은 코로나바이러스가 유발한 패배감의 다른 얼굴일지 모른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우리나라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비교적 구성원들의 비대면 세상에 대한 준비가 잘 되어있다는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망이 전국 어디나 완비되어 있고, 전자상거래에 대한 노하우가 오랜 기간 축적되어 있고, 공공 데이터의 양이나 질이 비교적 잘 확보되어 있다.

요즘 저녁 시간대에 아파트 대단지 중심으로 배달하는 오토바이가 급증한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콧대 높던 유명 맛집들이 배달, 포장을 허용하기 시작하는 것은 포스트 코로나에 적응하는 하나의 상징적인 장면이다. 유튜브 채널의 급증, 홈트레이닝 시장의 성장 등은 조금이라도 빨리 변화를 받아들이고 한 발이라도 앞서가고자 하는 노력의 모습이다.

정부의 지원도 한계가 있다. 모든 국민들에게 수 천만 원을 준다고 한들, 삶을 영위할 동력이나 수단이 없으면 금방 마르고 소멸할 돈이다. 단순히 오프라인 사업이 온라인 사업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뻔한 전망이 아니라, 이제는 최소한의 만남을 통해 최대한의 목적을 이뤄야 하는 삶이 시작됐다.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도 호스트가 영상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한다거나, 같은 건물의 같은 회사에 다녀도 화상 미팅이 잦아지는 풍경이 펼쳐질 것이다. 언젠가는 백신이 나오고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게 되겠지만, 안전에 대한 전례 없는 요구를 주고받게 될 것이다. 미래는 예측하는 자가 이끌어간다고 하지만, 요즘만큼 전 세계인이 미래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시대가 있었을까.

결국 코로나바이러스로 내가 어떤 피해를 보았든 최종적인 책임은 결국 내가 져야 한다. 과거에는 새로운 발견이나 기술의 발전이 패러다임을 바꿔왔다면, 2020년은 강제적으로 패러다임이 바뀌는 해가 됐다. 세상은 이전과는 아주 다른 방식으로 이미 바뀌었다.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어떻게 버텨낼 것인가. 경제적 코로나가 이미 시작됐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저작권자ⓒ 위클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