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졸 창업자가 세운 발뮤다, 열정과 철학으로 엘리트주의 반기
중졸 창업자가 세운 발뮤다, 열정과 철학으로 엘리트주의 반기
  • 김신강
  • 승인 2020.12.17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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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17일] - 단순하면서도 세련된 디자인으로 일본 가전 업계의 ‘애플’로 불리는 발뮤다. 국내에서는 다이슨과 더불어 외산 프리미엄 가전제품의 양대 산맥으로 불린다. 발뮤다는 2018년 기준으로 매출 100억 엔(약 1,000억 원)을 돌파했는데, 이 중 한국에서의 매출이 30% 이상을 기록했다. 많은 국가에서 팔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연 압도적인 비율을 자랑한다.

‘진정한 토스터’라는 입소문을 타며 한국에서 입소문을 탄 ‘발뮤다 더 토스터’, 독특한 날개 구조로 한때 품절 대란을 겪었던 ‘그린 팬 청소기’ 등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며 유독 한국에서만 다이슨에 필적하는 고급 이미지를 구축했다.


발뮤다가 한국 시장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보여주는 사례는 작년 공기청정기 ‘발뮤다 더 퓨어’를 전 세계 최초로 한국에서 출시한 것에서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일본보다 더 먼저 출시했다. 물론 당시는 미세먼지가 한국에서 워낙 뜨거운 이슈였다는 특수상황도 있지만, 자국보다 해외에서 신제품을 더 먼저 선보이는 경우는 소위 ‘되는 시장’이라는 이유 외에는 달리 설명하기 어렵다.

그러나 발뮤다는 작년 한일 갈등의 직격탄을 피하지는 못했다. 프리미엄 일본 가전으로 한국에서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유니클로와 더불어 불매운동의 주된 타깃이 됐다. 불매운동 초기에는 매출이 80~90%까지 떨어지기도 했고 지금도 완만한 회복세에 있기는 하지만 쉽게 회복될 기세는 아니다.

한국 매출 하락은 곧 회사의 존폐를 좌우하는 이슈가 된다. 이에 발뮤다는 올해 미국에 진출해 주력상품인 토스터와 주전자를 시작으로 판매하기 시작했다. 한국을 비롯한 주요 국가에는 무선 LED 랜턴, LED 조명, 블루투스 스피커에 이어 무선 청소기까지 출시하며 공격적으로 라인업을 늘려가고 있다.

이달 발뮤다는 일본 증시에 상장했는데, 첫날 공모가 대비 2배 급등했다. 첫날 공모가 1,930엔 대비 63% 오른 3,150엔에 시초가를 형성하더니, 가격제한폭인 3,850엔까지 오른 뒤 거래가 중단되는 사태에 이르렀다.

#디자인과 연구에 몰입하고 생산은 외주로


발뮤다는 2003년 설립한 비교적 짧은 역사의 회사다. 일본 회사로는 드물게 공장도 보유하지 않고 디자인 등 제품 연구에만 몰입하고 생산은 철저히 외주로 진행한다. 소니, 파나소닉 등 역사가 깊고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전자 회사를 보유한 일본에서 이런 신생 기업이 놀라운 성공을 거두고 있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발뮤다의 창업자 테라오 겐의 이력은 유명하다. 1973년생으로 30대 초반에 발뮤다를 설립한 그는 최종학력이 중졸이다. 17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작고한 어머니가 남긴 보험금 3천만 원을 들고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등 유럽을 돌며 1년을 보냈다. 귀국한 후에는 록 밴드를 만들어 정식 음반도 출시했지만, 회사가 망하며 성공하지 못했다.

보편적인 시선에서 접근하자면 ‘낙오한’ 인생의 모습이었다. 학교도 졸업하지 못했고, 부잣집 아들도 아니었다. 절박했던 테라오는 록 밴드처럼 창의적인 일을 하겠다는 결심으로 디자인 창조기업이라는 콘셉트의 발뮤다를 창업한다.

홈페이지도 독학해 직접 만들고, 제품 기획 설계, 중국에 외주 생산을 맡기고 관리하는 일까지 모두 혼자 했다. 일본 가전의 애플이라는 별명처럼 실제로 그는 스티브 잡스와 애플의 마니아였고, 그들의 디자인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다.

테라오 사장은 일벌레로도 유명하다. 하루 16시간 일을 하고, 골프 같은 취미에는 아예 관심이 없다. 그의 전공인 전자 기타 연주를 하는 정도가 유일한 여가 활동이다. 물 항아리의 디자인에서 영감을 얻은 레인 가습기, 이중날개를 통해 전력 소비를 10분의 1로 줄인 그린팬 선풍기 등은 하루 16시간을 연구하고 몰입한 그의 결과물이다.

테라오 사장의 열정은 학력 위주의 한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도 크다. 물론 워라밸이 중시되는 요즘 사회에 올바른 방향인가에 대한 갑론을박은 있을 수 있겠으나, 적어도 직원을 채용하고 그들의 삶을 책임지는 창업자라면 스펙이나 배움의 수준이 아닌 집중력과 몰입도가 성공의 열쇠라는 간접적 증명이 된다.

돈 많은 2세로 태어나지 않은 채 자본에서 온전히 자유롭기 위해서는 ‘피나게’ 일해야 한다는 그의 열변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여느 성공한 제품이 그러하듯 발뮤다도 ‘짝퉁’ 제품이 정말 많이 나온다. 테라오는 “전혀 두렵지 않다”라고 일갈한다. 모방 제품이 쏟아지면 오리지널에 대한 충성도는 높아질 것이고, 인지도 역시 자연스럽게 더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이다.

애플의 팬인 그는 “전 세계 스마트폰 디자인 중 애플의 영향을 받지 않는 제품이 과연 있겠는가”며 반문한다. 발뮤다 역시 당연히 고비가 있었다. 가뜩이나 프리미엄 제품을 지향하며 달리던 회사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으며 빚더미에 안기도 했다. 당시 매출이 4억 원에 불과했는데 빚이 3억 원이었으니 도산하지 않은 게 용할 정도다.


발뮤다를 지금의 명성에 올려놓은 계기가 된 것은 바로 그린 팬 선풍기다. 아이러니하게도 금융위기처럼 국가적 위기가 발뮤다에는 기회가 됐다. 우리나라에도 고정 팬이 많은 그린 팬 선풍기는 50만 원이 넘는 정말 ‘말도 안 되는’ 가격으로 판매된다. 발뮤다가 자랑하는 이 선풍기의 이중 날개는 전력 소비를 기존 선풍기의 10분의 1로 줄이면서도 일반 선풍기보다 4배 넓은 범위를 자랑한다.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나면서 전력난을 겪자 이 선풍기가 소위 ‘대박’을 친 것이다. 매년 2~3배씩 성장하며 직원이 수 십 명 늘었고, 이 선풍기 하나로 한국, 독일, 중국에 연이어 진출했다.

#아주 피곤한 CEO 그렇기에 가능했던 혁신


발뮤다의 성공 요인은 밖으로는 혁신적이고 심플한 디자인을 사용자 경험까지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것이고, 안으로는 창업자의 치열한 연구와 강박에 가까운 자기관리가 있었다는 것이다. 직장인들이라면 아마 공감하겠지만, 저런 CEO는 보통 아주 피곤하다. 대충 일하는 것을 참지 못하고, 개선하려는 노력이 부족한 직원을 혐오에 가깝게 대할 것이다. 성장하려면 최고의 리더일 것이고, 편하게 일하려면 최악의 리더일 확률이 높다.

일본 기업이라는 특수성 때문에라도 고운 눈길로 바라보기는 힘들지만, 아마도 발뮤다의 성공은 이어질 확률이 높다. 상장하자마자 상한가에 도달할 정도로 일본인들의 기대가 높다는 표면적인 현상보다는, 다른 기업이 갖지 못한 뚜렷한 아이덴티티와 방향성이 있기 때문이다.

발뮤다는 디자인과 기능적으로는 애플을, 에너지와 철학적으로는 파타고니아를 철저히 벤치마킹한다. 표절이 아니라 정말 그들의 감성을 본받아 발뮤다만의 것으로 재가공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스마트폰 회사와 패션 회사를 벤치마킹해 선풍기, 토스터, 청소기를 만들고 있으니 사실 모방을 하는 것도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제대로 된 스승이 있으면 제대로 된 제자가 나올 수밖에 없다는 말처럼, 발뮤다는 미국의 이 두 기업을 가이드로 삼아 그들만의 색깔을 만들고 있다.

요즘 20~30대는 ‘공정’이라는 단어에 유난히 민감하다. 그만큼 공정하지 못한 사회에 대한 박탈감과 피해 의식이 높은 시대다. 학력마저도 점차 자본 순이 되어가고, 그 학력은 사회에서 새로운 유리 벽을 만들어 그들만의 카르텔을 공고히 형성한다.

일본이 좀 덜할 수는 있겠지만, 그들 역시 지독한 엘리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다. 결과론이지만 발뮤다는 중학교만 나온 창업자가 세상을 바꾸는 역사의 현장에 있다. 국적을 떠나 우리 사회 청년들에게도 희망이 되는 사례가 됐다. 물론 그만큼 부담스럽기도 하다. 성공하려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니까.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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