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비스포크 VS LG 오브제 … 가전도 디자인 시대
삼성 비스포크 VS LG 오브제 … 가전도 디자인 시대
  • 김신강
  • 승인 2021.04.13 12: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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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4월 13일] - 최근 10년 간의 변화가 과거 100년, 혹은 1,000년의 변화보다 크다고 말할 정도로 빠른 시대를 살고 있다. 산업 기술의 가파른 발전은 제조업의 문턱을 대폭 낮췄고, 이제는 어떤 카테고리든 어떤 제품이든 ‘없어서’ 못 사는 경우는 없다.

기술이나 기능도 대동소이해서 누가 소비자의 ‘취향’을 맞추느냐가 성공을 가늠하는 잣대가 된다.

지금이 디자인 시대인 이유는 그 때문이다. 취향이라는 것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고, 어떤 브랜드가 대중 사이에서 ‘유행하는’ 디자인을 만들어내느냐가 중요해졌다. 다이슨, 애플, 발뮤다 등이 오늘날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하게 된 배경에는 제품의 기능보다 고급스러운 디자인이 있음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다.


상대적으로 대형가전제품은 디자인으로부터 자유로웠다. 10년 이상을 써야 하는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은 디자인도 중요하지만 얼마나 고장이 나지 않는가, 얼마나 튼튼한가 하는 것이 중요한 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수백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을 큰 맘먹고 사야 하기도 했고, 주로 실내에서 사용하는 제품이기 때문에 밖에서 드러나는 옷이나 휴대폰보다는 생김새에 대한 중요성이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가전을 대표하는 양대 축, 삼성과 LG는 비슷비슷하게 생긴 가전을 매년 꺼내 들며 새로운 기능이 어떤 것인지, 얼마나 전기 절약을 할 수 있는지, 보증기간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주요 메시지로 선보이며 등급 정도만 나눠 선보였다.

이 흐름은 2019년 하반기부터 완전히 바뀌고 있다. 이른바 ‘맞춤형 가전’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금도 한샘, 일룸을 비롯한 가구 브랜드에서 붙박이장, 협탁 등을 맞춤 제작하고 있지만 가전을 집의 환경이나 개인의 취향에 맞게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다.

디자인이 중요해진 것이 어제오늘의 일을 아니지만 코로나19의 장기화는 가전제품의 경쟁을 더욱 촉발시켰다.


비대면이 일상화되고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인테리어 소품이나 홈트레이닝 제품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것은 이제 외부에 ‘보이는 나’보다 내부에서 ‘바라보는 나’라는 개념이 훨씬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그리고 가전제품은 청소, 빨래, 요리를 해야 하는 내부 활동의 핵심 중 핵심이다.

디자인을 통해 제품을 프리미엄 화하고, 다른 집과 차별화된 감성을 제공하겠다는 개념의 시작은 사실 LG였다. LG는 2018년 자사 가전의 프리미엄 라인 ‘오브제’를 출시하고 TV, 냉장고, 오디오, 공기청정기 등에 고급 원목을 사용한다거나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을 적용한다거나 하는 방식으로 ‘가구와 가전의 만남’을 콘셉트로 내세웠다.

가전제품이지만 원목 가구의 감성을 입혀 집 안의 환경을 한층 고급스럽게 개선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존 제품 라인 대비 2~3배 비싼 가격은 ‘고장’이 날 수도 있는 가전제품의 한계 상 높은 진입 장벽이 됐고, 일부 고객들의 전유물이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LG 역시 오브제 라인을 대중화할 생각은 없었다.


이듬해 6월 삼성이 비스포크 냉장고를 선보이며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예나 지금이나 삼성과 LG의 우열을 가르는 결정적인 차이가 마케팅이라는 말이 많이 들리지만, 비스포크는 제품을 ‘프리미엄화’하는 것이 아니라 ‘맞춤화’하는데 포커스를 맞췄다.

냉장고 도어의 개수, 냉장칸이나 냉동칸의 위치 선택, 스탠딩 방식 옵션, 도어의 소재와 컬러에 대한 다양화 등을 내세우며 기존 제품과 차별화했다. 프리미엄을 표방하지 않았지만 가격은 ‘자연스럽게’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비스포크 냉장고는 출시 6개월 만에 삼성전자의 국내 냉장고 매출의 50%를 달성했고, 작년 말 기준 67%를 차지하며 삼성 냉장고 라인의 대세로 완전히 자리 잡았다. 이후 전자레인지, 인덕션, 식기세척기, 에어컨 등 거의 전 라인에 걸쳐 비스포크 개념을 적용하고 있는데, 이재승 삼성전자 사장은 올해 비스포크의 비중을 80%까지 높일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LG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2020년 11월 기존 오브제 제품에 더해 냉장고, 정수기, 스타일러 등 11종을 추가하며 ‘오브제 컬렉션’을 선보였다. ‘가전의 LG’라 불릴 정도로 고객의 선호도가 높다고는 하지만, 갈수록 고객들이 매장을 방문해 ‘비스포크 같은 것’을 묻는 흐름을 거스를 수는 없다.


스타일러, TV 등 삼성 대비 특허나 기술 면에서 객관적으로 앞서 있는 라인업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이미 비스포크 라인으로 고객의 눈을 사로잡은 삼성의 공격적인 드라이빙에 제동을 걸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요컨대 가전제품의 디자인 전쟁은 이제 시작이라 봐도 무방하다.

아직은 맞춤형 가전의 가격적인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지만, 점차 이런 형태의 소비가 보편화될수록 대중적인 가격으로 점차 내려오고 라인업도 더욱 다양해질 것이다. 제조사가 취향을 고민해 내놓는 시대가 지나가고, 소비자가 직접 자신의 취향을 녹일 수 있는 가전 시대가 도래했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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