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씨함(정치적 올바름), 트렌드가 되다
피씨함(정치적 올바름), 트렌드가 되다
  • 김신강
  • 승인 2020.09.08 1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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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한 시선인가? 올바름에 대한 반감인가?

미투, 페미니즘, LGBTQ와 자본주의의 아이러니한 동거




[2020년 09월 08일] -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추구하는 정신. 트위터를 비롯한 SNS 일각에서 조금씩 퍼지던 ‘피씨하다’는 말은 유행어처럼 번져 문화, 교육, 예술을 넘어 사회 구성원이라면 응당 갖춰야 할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다. 영어 표현을 줄여 부르는 비문이지만, 완벽히 그 의미를 포괄하는 대체어가 없는 상황에서 젊은 세대 중심으로 통용되는 말이다.

일각에서는 피씨하다는 표현이 성별과 세대 간의 혐오 발언, 미투나 페미니즘 등 여성 인권 운동 등으로 그 의미를 축소하거나 오해하여 거부감을 표하기도 하나, 점차 타인을 존중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올바른 가치관을 의미하는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직은 ‘피씨하지 않다’는 말이 여성이나 성 소수자 등 상대적인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폭력이나 혐오에 국한되어 사용되는 경우가 많으나, 보다 진정한 평등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개념이 확장되어 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르다는 말은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좌파-우파, 민주당-국민의 힘 등을 나눠 지지하는 ‘정치’와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르며, 타인에 대한 포괄적인 ‘예의’를 뜻한다. 어떠한 표현을 할 때 이를 접할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여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미를 뜻한다. 좁은 의미로는 성희롱, 외모 비하, 성 소수자 비난과 같은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표현을 삼가자는 의미가 되고, 넓은 의미로는 다양한 가치관과 세계관에 대한 온전한 존중, 성별과 인종, 연령에 따른 고정관념을 타파하고 역할을 한정 짓지 않는 사고방식을 말한다.

아주 단순히 보면 그저 ‘평소 조심하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정치적 올바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논란이 있는 일이나 말을 ‘참는 것’이 아니라 논란이 생기지 않을 생각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회가 자리 잡는 것이다.

최근 넷플릭스의 영화 ‘365일’, 기안84의 웹툰 ‘복학왕’ 등이 연일 여혐 논란을 일으키며 도마 위에 올랐다.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은 철저히 기호에 따른 선택인데 지나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쪽과 혐오는 자유의 영역이 아니라 배척의 영역이 되어야 한다는 쪽의 의견이 팽팽하다. 찬반을 떠나 흥미로운 지점은 피씨함은 문화 콘텐츠에서 엄청나게 중요한 고려 요소가 되었고, 심지어는 트렌드의 중심이 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영상 콘텐츠에서 그 경향은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과거 영화의 여주인공은 철저히 남자 주인공의 성공과 영광을 위한 조력자, 도우미, 심하게는 트로피 수준으로 그치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온 국가와 세계를 위해 외계인을 물리치고 마지막에 여자 주인공과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우리의 위대한 블록버스터 영웅을 우리는 지겹도록 소비해왔다. 마치 보통명사처럼 입에 붙는 슈퍼맨, 배트맨 등 각종 ‘맨’들은 소위 ‘돈’이 되는 자본주의의 성공 공식과도 같았다.

그런 맥락에서 2016년 디즈니가 선보인 ‘모아나’는 매우 충격적이고 상징적인 하나의 사건이었다. 디즈니는 누구나 인정하는 수동적이고 가녀린 여성을 ‘여자다움’으로 만든 일등 공신이다. 오죽하면 드림웍스가 ‘슈렉’을 통해 디즈니의 외모지상주의를 비아냥댔겠는가. 디즈니는 그들이 성공해온 방식을 그들의 브랜드이자 정체성으로 삼았고, 곧 그것이 ‘디즈니다움’이라 여겼기에 세상의 변화에 둔감하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사실 디즈니 특유의 사랑스럽고 아기자기한 역사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 많았기 때문에 변화가 조심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모아나는 그 전에 디즈니가 여성 주인공으로 보여줬던 ‘미녀와 야수’의 벨, ‘알라딘’의 재스민, ‘라푼젤’의 ‘라푼젤’과는 분명히 결이 달랐다. 모아나 이전 여성 주인공 작품들은 해당 여성들에게 결코 없어서는 안 될 남성 조력자가 반드시 있었다.

벨은 야수 없이 미녀일 수 없고, 재스민은 알라딘 없이 성을 벗어나 생활할 수 없다. 모아나는 스스로 영웅이 된다. 외부 세계에 혼자 호기심을 갖고 떠나고, 의존적이지 않으며, 당면한 어려움을 스스로 힘으로 이겨낸다. 모아나가 정말 큰 위기를 보일 때 그녀를 돕는 것은 푸른 바다와 할머니의 목소리다. 다분히 여성성을 상징하는 도구들을 통해 디즈니는 대놓고 방향의 전환을 커밍아웃한다. 이는 디즈니가 드디어 ‘정신 차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가장 자본주의적인 회사가 이것이 앞으로의 ‘돈’이라는 것을 인정한 명징한 사건이다.


대형 블록버스터의 또 다른 이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마블은 어떠한가. 작년의 가장 뜨거운 감자였던 ‘캡틴 마블’ 역시 상징적인 작품이 됐다. 최초의 여성 히어로 단독 주연 영화였고, 캡틴 마블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숱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대표적인 페미니스트 배우인 ‘브리 라슨’이 캐스팅됐고, 개봉일은 세계 여성의 날이었다. 다분히 의도적이고 전략적인 선택임을 부인할 수 없는 구조다.

마블은 철저히 여성 관객에 포커스를 맞춰 이 작품을 준비했다. 브리 라슨 역시 직접 페미니즘 영화라고 홍보를 한다. 영화 산업은 당연히 ‘돈’에 의해 움직인다. 블록버스터는 더더욱 그러하다. 캡틴 마블이 다른 마블 작품에 비해 엄청난 흥행을 거둔 것은 분명 아니지만, 주류 영화가 주목하는 대중의 기호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넷플릭스에는 LGBTQ 카테고리가 아예 별도로 있다. 레즈비언(Lesbian), 게이(Gay), 바이 섹슈얼(Bisexual), 트렌스젠더(Transgender), 성적 정체성을 명확히 할 수 없는 사람(queer)으로 나눈, 미국에서는 너무도 익숙해진 단어다. 14년 전 개봉해 성 소수자 영화의 상징이 된 ‘브로크백 마운틴’을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동정적이고 아련했지만, 지금 그런 시선은 사뭇 ‘촌스럽다’.

LGBTQ 콘텐츠들은 성 소수자들을 무대의 중심에 올려놓고 이성애자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구성한다.

‘오렌지 이즈 더 뉴 블랙’, ‘그레이스 앤 프랭키’, ‘퀴어 아이’ 등 큰 성공을 거두고 공고한 마니아를 구축한 히트작은 단순히 성 소수자 이슈뿐 아니라 남성 중심의 세계관, 인종차별, 세대 갈등 등의 중요한 문제들을 유쾌하고 부드럽게 비틀어 드러낸다. 2000년대 공존의 대히트를 기록했던 ‘프렌즈’에서는 주인공 로스 게이라는 오해를 받고 펄펄 뛰며 화를 내고 관객은 자지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오피스’에서는 주인공 마이클이 여자 직원의 가슴 크기를 놓고 대놓고 평가를 한다. ‘빅뱅 이론’에서는 어제 만난 여자와의 잠자리가 어땠는지를 과학적 용어로 풀어내고 관객은 손뼉을 친다.

지금도 너무나 높은 가격에 판권이 거래되는 이 작품들을 이제 불편하다고 느끼는 이들이 늘고 있다. 사실 성적인 유머는 유쾌하고 중독성이 있어 코미디에서 포기할 수 없는 코드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작가들의 딜레마가 발생한다. 어쨌든 세상은 기분 나쁜 사람이 없는 야한 개그가 가능한 문화를 요구하고 있다.

피씨함을 고루하고 따분하고 지루한 관념이라 여기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 희한한 단어는 혐오와 차별, 폭력에 대한 누적된 공포와 분노가 터져 나와 엄청난 속도와 강도로 폭발한 단어다. 지금은 트렌드지만 결국은 상식이 될 것이다. 이 상식의 흐름에 맞추어 함께 성장하는 콘텐츠가 결국 대중적으로 사랑받고 인정받게 될 것이다. 결국 문화는 시대상의 반영이니까.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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