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 배경 연극 막다른 곳의 궁전
걸프전 배경 연극 막다른 곳의 궁전
걸프전 배경
끔직하고 무서운 진실
담담하게 그려내
독백속에 담긴 속뜻
  • 김현동
  • 승인 2018.12.03 03:1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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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프전 배경 연극 막다른 곳의 궁전, 오는 16일까지 공연
놀랍도록 담담하게, 그리고 현실적으로 보여주는 또 다른 현실




[2018년 12월 03일] - 2018년 디렉터그42가 선택한 막다른 곳의 궁전은 2003년 이라크 제2차 걸프전쟁을 배경으로, 그 상황에 놓여진 3명의 인물들의 개별적 이야기를 통해 폭력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의미로 상처주고, 고통받는 인간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더 나아가 이라크라는 단순히 먼 나라의 오래된 이야기가 아닌, 2018년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이질적인 나라인 이라크의 실제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 세상이 타인의 고통에 대해 점점 더 무뎌지고 무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를 이야기 하고자 했다.

본 연극은 작가 주디스 톰슨(Judith Thompson)의 작품으로 ‘Susan Smith Blackburn Award’(영어권 여성극작가가 쓴 그해 최고의 작품에 수상)와 ‘국제 엠네스티 Freedom of Expression Awards’(인권이라는 주제를 가장 잘 묘사한 작품에 수상) 수상하였고, Canadian Stage에서 초연된 이후 전 세계 여러 언어로 공연한 바 있다.

2003년 이라크 제 2차 걸프전을 기본 배경으로, 그 상황이 개인에게 어떻게 작용했고, 어떻게 반응하게 했는지 세 편의 독백을 통해서 그려냈다. ▲나의 피라미드 ▲해로우다운 언덕 ▲갈망의 도구들로 구성한 세편의 독백에는 국가에 대한 그릇된 충성으로 반인권적인 폭력을 행한 사람, 국가라는 이름으로 타국에 자행된 그릇된 폭력에 눈감은 사람, 그리고 국가의 반인권적인 폭력으로 모든 것을 잃었지만 언젠가 평화가 올 때까지 지켜보는 세 명의 인물의 시선이 담겨있다.

작가 주디스 톰슨(Judith Thompson)의 인터뷰에 따르면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에서 학대 행위를 했었던 미군 여성의 사진을 보고 관심이 생겨서 작품을 구상하게 되었다고 한다. 가난과 무지로 사회의 바깥에 아무런 보호막 없이 놓였던 23살의 미국 여성이 왜 이렇게 끔찍한 선택을 했는지에 대해 조사하면서 이야기를 만들기 시작했다고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보통 독백으로 이루어진 연극은 인물 간의 소통과 관계를 제대로 그려내지 못할 거라는 우려를 받기 쉽지만 막다른 곳의 궁전은 세 편의 독백을 통해서 관객의 공감뿐만 아니라 인물 사이의 소통을 그려냈다. 작품 속에서는 폭력으로부터 생존한 사람들과 그 폭력으로 황폐해진 사람들을 보여줌으로서 폭력을 직시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그리고 이제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이 작품을 통해서, 인간인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

한편, 연출가 마두영, 번역가 겸 드리마터그 이홍이, 마정화로 구성된 디렉터그42가 한국에 소개된 적 없는 해외작품을 저작권을 해결해서 한국에 처음으로 소개하는 방식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해외 작품을 처음으로 만날 수 있는 단체다. 막다른 곳의 궁전은 11월 29일부터 12월 16일까지 나온 씨어터에서 만나 볼 수 있다.


진실, 진실, 진실,
끔찍하고 무서운 진실.


막다른 곳의 궁전의 작가 주디스 톰슨은, ‘자신은 작품을 정치적이나 사회적 입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인물의 피를 종이에 옮기는 걸로 시작한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즉 인물의 사적인 삶으로 들어가서 그 인물을 연기한다고 생각하고 만들어낸다고 부연하면서 미군 병사의 모델인 린디 잉글랜드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난하고 희망이 없는 가정에서 도덕적 교육을 전혀 받지 못한 채로 살아 온 한 여성이 그 불결하고 폭력적인 환경을 벗어날 외모나 지능과 같은 다른 재능마저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면 그런 사람에게는 어떤 생존의 선택이 가능할까? 작가는 이런 질문을 던지면서 린디 잉글랜드가 자신의 생존을 위해 쓴 가장 큰 근육은 부정(denial)이라고 보았다.

사실 우리 모두 뭔가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지금의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지구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참혹함을 부정하고, 전쟁으로 인한 난민을 부정하고, 당장 이 추운 거리에 있는 노숙자들의 현실을 부정하고, 자살로 몰려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람들을 매일 부정하고 외면한다. 린디 잉글랜드는 그런 우리 중의 하나였다.

군대를 가기 전에는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친구들에게 기생하고, 군대에서는 따돌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동료들의 학대 행위에 참여하고 적극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더 끔찍한 학대 행위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그 미군 병사는 결국 그 무게에 짓눌릴 때까지 부정과 외면의 근육을 계속 키워 나간다.

데이빗 켈리는 린디 잉글랜드처럼 참혹한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현실 부정을 택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평안과 안위를 위해 부정과 외면을 선택한다. 사회의 강자가 부정근육을 사용했을 때는 더 큰 보상이 뒤따른다. 그는 자신의 연금을 위해, 명성을 위해, 그밖에 얻을지도 모르는 사회적인 특권을 위해서 바로 발 밑에서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목소리를 외면하려고 애쓴다.

어쩌면 현실 부정과 외면이 더 잘 살아남기 위한 임시 방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데이빗 켈리는 이러한 외면과 부정을 계속하면서 자꾸 넘어지고 다치고, 모든 일에서 실수를 저지른다. ‘부정의 커튼’을 쳤을 때, 자발적으로 그 커튼을 내린 사람마저도 빛을 보지 못해 넘어지고 두려움에 떠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부정의 커튼을 들어 올릴 때 비로소 우리는 세상을 온전히 직시하게 된다. 그 끔찍한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에서 모든 것을 잃어버렸지만 여전히 세상을 직시할 수 있는 것을 보게 된다. 막다른 곳의 궁전은 우리의 선택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리고 무엇을 할 것인지, 이 세 명의 인물들을 통해서 2018년 우리는 묻고 싶다. 이제 대한민국에서 우리는 사회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살아남을 것인지.

2018년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조금은 낯설고 이질적인 나라인 이라크의 실제 사건을 조명함으로써 우리가 타인의 고통에 대해 얼마나 공감할 수 있는지, 세상이 타인의고통에 대해 점점 더 무뎌지고 무심해지는 것은 아닌지, 그렇다면 타인의 고통에 대해 공감하기 위해 서는우리가 어떤 시선을 가져야 하는지 작품을 통해 사유하길 기대해 본다.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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