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상권 몰락, 코로나가 발가벗긴 젠트리피케이션
홍대 상권 몰락, 코로나가 발가벗긴 젠트리피케이션
  • 김신강
  • 승인 2021.03.09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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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3월 09일] - 코로나19가 처음으로 발병한 지 1년 하고도 3개월이 지났다. 전 세계 누적 확진자는 1억 명을 넘었고, 사망자도 261만 명에 달한다. 말이 15개월이지 처참한 기간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배달업, 유통업 등이 성업을 이뤘지만 이는 극히 일부 업종의 이야기이고, 오프라인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대부분의 중소상공인은 삶의 기로에 서 있다.

날씨가 따뜻해지고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조금씩 낮추면서 거리에도 희망의 기운이 조금씩 감돌고 있지만 서울 홍대 상권의 몰락은 어렵다는 수준을 넘어 참담한 수준이다.

지난 1월, 홍익대학교 정문 앞 스타벅스가 폐점했다. 지방도 아닌 전국에서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곳 중 하나인 홍대 삼거리 앞 스타벅스가 문을 닫았다는 사실은 홍대 상권의 몰락이 어느 정도인가를 짐작하게 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됐다. 물론 폐점은 단순히 매출 하락이 원인이 아닐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스타벅스가 가지는 위상과 부동산의 위치를 감안했을 때 이 폐점이 남긴 의미는 남다르다.


▲홍대삼거리 앞 대형 스타벅스가 지난 1월 문을 닫았다

스타벅스뿐만이 아니다. 자라, 버거킹, 다이소, 맥도널드, 아리따움 등 이름만으로도 쟁쟁한 브랜드들이 작년 하반기부터 연이어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 홍대역 9번 출구를 비롯해 홍대 상권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노른자위 땅에 있던 상점이다.

불패신화를 이어오던 프랜차이즈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으니 소상공인들이야 오죽하겠는가. 한국 부동산원에 따르면 작년 4분기 기준 홍대 합정 상권의 공실률은 19.2%에 달한다. 3분기 9.2% 대비 2배 이상이다. 불과 3개월 만에 일어난 일이다.

서울에서 수치적으로 홍대보다 심각한 곳은 명동과 이태원뿐이다. 그러나 명동과 이태원은 외국인들의 주 무대라는 점에서 코로나 19의 직격탄을 맞은 것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측면이 있다. 홍대는 10대, 20대 위주의 한국 젊은 층이 이끌어온 상권이라는 점에서 코로나가 진정되더라도 불황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심각성이 있다.

홍대 상권 몰락의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코로나 바이러스에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코로나로 인해 홍대 상권의 부실한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홍익대에 재학 중인 2학년 김지은 씨(20, 가명)는 “클럽이나 포차를 좋아하지 않는 이들은 학생들조차도 홍대에 갈 곳이 없다고 이야기한다”며 “프랜차이즈 위주의 뻔한 음식점과 카페만이 즐비해서 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홍대에는 ‘홍대 문화가 없다’는 본질적인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한 때 예술의 거리라고 불렸던 홍대는 화가, 음악가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었다. 지금도 인디밴드의 공연은 홍대가 이끌고 있지만, 지금 그들은 홍대에 살지 않는다.

홍대는 우리나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 도심 인근의 낙후지역이 활성화되면서 외부인과 돈이 유입되고, 임대료 상승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의 시작과 같은 곳이다. 홍대 뮤지션들이 홍대만의 문화를 만들고 사람들이 몰려들자 대자본이 유입됐고, 임대료는 하루가 다르게 치솟으면서 그만의 분위기를 잃어버렸다.


클럽, 헌팅 포차가 홍대에 사람들을 붙들어 놓는 유일한 수단이 됐고, 밤 10시경부터 새벽 3~4시까지 환하고 시끌벅적한 홍대의 분위기는 개성이 사라진 거리의 실체를 가리는 결과가 됐다. 코로나로 인해 신체 접촉이 잦은 클럽과 포차가 문을 닫자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버린 것이다. 이번 코로나는 젠트리피케이션의 끝이 어떤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됐다.

요즘 연인은 홍대나 강남을 잘 찾지 않는다. 가로수길은 명동, 압구정동과 이제 뭐가 그리 다른 지 모르겠다. 힙한 거리로 떠오르던 성수동은 떠오르는 속도보다 프랜차이즈의 입점 속도가 더 빠르다. 의아하게도 주차가 불편하고 좁은 골목이 즐비한 을지로, 익선동 등지로 몰리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건물과 불편한 입지 등으로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기 어려운 환경을 일부러 찾아다니는 것이다.

홍대 상권의 몰락은 단순히 코로나로 인한 문제를 넘어 몰개성 한 한국의 거리 문화가 가져오는 처참한 결말에 대한 거울이다. 똑같이 생긴 아파트, 똑같이 생긴 산책로가 개발이란 이름 하에 여기저기 생겨난다. ‘동네 분위기’라는 것이 사라져 간다. 코로나 이후의 오프라인 문화에 대한 거시적인 시각과 대책이 필요한 때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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