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언컨대 기계식 키보드의 끝판왕, 앱코 AR87
단언컨대 기계식 키보드의 끝판왕, 앱코 AR87
  • 김신강
  • 승인 2020.10.25 17: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언제까지 수제작? 제대로 만든 기성품 기계식!

현존하는 기계식 키보드 중 끝/판/왕. 앱코 AR87




[2020년 10월 25일] - 팬이나 마니아가 많은 분야는 제조사나 서비스 개발자보다 사용자들이 더 깊이 있고 있는 혜안 있는 지식을 습득해 대안을 제시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자동차, 휴대폰, 패션 분야를 예로 들 수 있다. 최근 반복된 화재로 리콜 결정을 내린 코나 전기차의 경우 기자 출신의 유튜버가 작년에 제기한 경고가 시발점이 됐다.

전문성이 높은 이가 제기한 문제에도 쉬쉬하던 언론과 현대자동차는 10대가 넘는 화재가 발생한 후에야 부랴부랴 리콜 결정을 내렸고, 그마저도 꼼수 리콜이라는 비판을 받으며 브랜드 자체의 신뢰성을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

이번에 출시한 아이폰12 시리즈의 경우 메모리가 6G로 전작보다 높아진 것으로 알려졌으나,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DDR5로 탑재됐을 것이라 전망했지만 커뮤니티 멤버들이 아이폰11과 똑같거나 심지어 더 다운그레이드가 되었을 지도 모르는 근거를 내놓았다. 사전예약 매진의 열풍으로 모두가 역시 애플이라 외칠 때 주식 한 주 없는 마니아들이 애플의 숨겨놓은 마진의 비밀을 캐내고 폭로하고 공유한다.

서로 베끼고 베끼는 문화가 일상화된 패션 분야는 말할 것도 없다. 자라의 경우 명품들의 컬렉션이 발표되면 모든 제품을 구매해 해체하고 신속하게 유사한 디자인으로 만들어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것은 이미 비밀 아닌 비밀이다.

최근에는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가 국내 브랜드 플레이노모어의 ‘샤이걸’ 가방이 그들의 버킨백, 켈리백 디자인을 도용했다고 소송을 제기해 ‘패러디’라고 한 2심을 뒤엎고 최종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오히려 해당 판결 이후 플레이노모어의 제품이 품절 대란으로 이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지만 국내 작은 브랜드의 디자인 도용이 에르메스 본사까지 도달하는 데는 사용자들의 연이은 의문 제기가 시발점이 됐다.

사용자의 깊이 있는 ‘까다로움’을 피할 수 없는 가장 대표적인 분야 중 하나는 역시 게임이다. 신작 출시 전 유저를 모아 버그를 찾는 알파테스트를 진행하는 것은 이제 당연한 일이 됐다. 자칭, 타칭 하드 유저들은 일반 사용자들보다 먼저 새로운 게임을 해볼 수 있다는 즐거움에 기꺼이 그들의 귀한 시간을 할애해 테스트에 참여하고 또 기뻐한다.


게임은 물론, 그 게임을 구동해야 하는 장비들에 대한 민감도도 높을 수 밖에 없다. 특히 콘솔 게임기보다 장비의 중요성이 훨씬 큰 PC 게임, 그 중에서도 특히 키보드는 게이머들의 퍼포먼스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당연히 더 예민하고 꼼꼼하게 본다. 커스텀 키보드나 기계식 키보드를 주제로 활발히 운영되는 국내 커뮤니티만 10개가 훌쩍 넘는다.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키보드는 사실 크게 두 종류로 나눠볼 수 있다. PC를 사면 덤으로 주는 기본적인 제품(주로 마이크로소프트나 로지텍의 기본 모델을 준다), 오랫동안 사용할 가치가 있는 제품. 후자의 경우 대부분 기계식 키보드다. 무선, 인체공학적 설계 등 다양한 장점을 내세우는 제품들이 많지만 결국 본질은 경쾌한 키감과 확실한 멀티태스크다.

일반 키보드는 대부분 고무 돔을 사용한다. 고무 돔 방식의 경우 반드시 키가 바닥에 닿도록 끝까지 눌러져야 인식한다. 게임 뿐만 아니라 하루종일 문서 작업이나 거래처와 온라인 대화를 나눠야 하는 근로자들이 손목터널 증후군에 시달리는 이유는 사실상 100% 키보드 때문이다.

기계식 키보드의 경우 딱딱거리는 특유의 소리에도 불구하고 마니아나 전문가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손목 통증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무 돔 대신 튼튼한 스위치가 작동부가 사용되어 키가 바닥을 치기 전에 스트로크의 움직임을 감지한다. 여러 키를 조합해서 누르는 일이 많은 게이머들의 경우 멀티태스크에 능하지 않으면 이는 곧 게임에서의 ‘패배’와 직결된다. 기계식 키보드의 경우 키 롤오버를 통해 6개에서 무제한까지 멀티태스킹이 가능하다.


기계식 키보드의 절대 강자 앱코가 내놓은 AR87은 대놓고 최고급 기계식 키보드를 지향한다. 무려 2.9kg의 어마어마한 무게감을 보여주는데(악랄한 키감으로 유명한 애플 매직키보드의 경우 0.23kg에 불과하다), CNC 풀 알루미늄으로 제작돼 최고급 소재를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보통은 강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다. 소재가 고급스럽기 때문에 기계식 키보드 특유의 둔탁한 감성을 줄이고 디자인적으로도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어냈다.

가격이 거의 30만원에 육박하고 오른쪽 숫자 키도 없지만 사용자들은 기꺼이 주머니를 턴다. 각종 키갤 사이트에서도 커스텀 키보드를 제외하고 현존하는 기성품 중에서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 ‘AR87이라 쓰고 어나더 레벨이라 읽는다’는 극찬을 듣는 AR87은 과연 뭐가 다른가?

기계식 키보드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키 스위치다. 그리고 스위치의 정석은 독일의 체리다. 누구나 체리 키보드를 쓰고 싶어하지만 도저히 단가를 맞출 수 없기 때문에 대부분의 기계식 키보드 브랜드들은 호환 키스위치를 쓰지만 앱코는 그대로 체리사의 스위치를 넣었다. 완성도가 높을 수 밖에 없다.

스위치 고유의 소리 때문에 소음에 대한 불만이 많은 것이 기계식 키보드계의 현실이다. 타건 시 발생하는 소리가 본체에 닿아 주변으로 퍼지는 현상, 즉 ‘통울림’이 있다는 말이다. AR87이 통 알루미늄으로 무게를 2.9kg까지 높인 이유가 바로 이 통울림을 막기 위해서다. 가격 인하에 효과적인 ABS나 재생 플라스틱은 일절 거부했다. 스위치부터 섀시까지 최고급만 고집한 결과다.

프리미엄 커스텀 키보드의 경우 하후징 무게만 3~4kg 이상 되는 경우가 흔하다. 커스텀 키보드의 경우 최소 40만원에서 수 백만원까지 간다. AR87이 기성 키보드로는 ‘악랄한’ 가격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자들이 가성비 키보드라고 극찬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용자는 수제 키보드 보다 더 나은 완성도를 보인다고 극찬한다. 아무래도 업체의 손을 거치나 더 나을 수 밖에 없다.


디자인 부분도 세밀히 잡았다. 다크그레이, 실버, 네이비의 3가지 컬러로 출시됐는데 컬러보다 인상적인 것은 사이드에 삽입한 RGB 바다. 은은한 광량을 보여주면서도 히든 방식으로 살짝 숨겨진 디자인을 연출했다. 소위 ‘싸구려 빛’이 방의 미관을 해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은은한 조명으로 밤에 게임이나 문서 작업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나 마감은 최고다. 가격에 부끄럽지 않은 매끈함을 드러내 보는 즐거움이 있다.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키보드답게 USB-C 타입의 인터페이스를 채택했고, 케이블은 탈부착이 가능하다. 잘 잃어버리지 않을 수 있는 것도 장점이지만, 향후 별도로 커스텀 케이블을 사용하더라도 무리가 없다. 함께 제공하는 케이블 조차도 고급스러움이 묻어난다. 비싼 제품을 구매한 만큼 대우받고 있구나 라는 느낌이 짙다.

키보드는 음향 기기나 자동차처럼 스펙 다운이 정말 어렵다. 한 번 좋은걸 만나면, 이후로는 나쁜 걸 쓸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낮은 제품에 눈을 돌리면 당장 스트레스 받는다. 그런 측면에서 굳이 커스터마이징 키보드의 어렵고 복잡한 세계는 들어가고 싶지 않은데 최고의 키보드 하나로 끝내고 싶다면, 2020년 10월 현재에는 앱코의 AR87이 유일한 답이다.

분명히 비싸다. 하지만 풀 알루미늄 소재와 마감, 체리 스위치의 사용성을 경험하면 싸게 잘 내놨다는 탄성을 외친다. 비단 키덕이라 부르는 소수 사용자가 아닌 보편적인 초보자도 써 보면 다르다는걸 느낄 수 밖에 없다. 참고로 아이패드의 매직 키보드가 38만 9,000원이다. 앱코 AR87을 써보면 아마 애플이라는 회사가 몹시 미워질 것이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저작권자ⓒ 위클리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