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싸는 엄마
도시락 싸는 엄마
  • 김일경 기자
  • 승인 2021.07.26 09: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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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경의 삶 난타하기]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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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서울=김일경 기자] 나의 첫 도시락 반찬은 무엇이었을까? 뇌세포 주름 어디엔가 깊이 박혀 있을 법한 기억은 좀처럼 뚜렷한 의식의 세계로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도시락의 생김새는 아직도 생생하다. 겨울철에는 길쭉한 직육면체 모양의 검은색 보온도시락이었다. 스테인리스 재질의 밥그릇과 대각선으로 경계를 이뤄 한 공간에 두 개의 반찬을 담을 수 있는 반찬통 그리고 네모난 보온도시락의 몸체와 둥그런 형태의 밥그릇사이 공간을 메워주는 용도를 겸한 물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납작한 네모 모양의 양은 도시락이었다. 누런 색깔의 양은 도시락은 교과서 크기와 비슷해 책가방 안에서 크게 이질감 없이 잘 어우러졌다. 하지만 네모난 양은 도시락은 반찬을 꼭 확인하고 책가방에 입장을 시켜야 했다. 책가방은 등에 매달리는 순간부터 흔들리기 시작했고 학교를 가는 중에도 내 발걸음마다 미동을 느꼈을 것이다. 그 미세한 움직임에 도시락 속의 내용물은 이리저리 흐드러지기 일쑤였고 때로는 김칫국물이 도시락 틈새를 비집고 나와 교과서며 공책들을 아주 선명하게 물들일 때도 있었다. 김칫국물에 염색을 당한 내 학용품들은 시큼한 신 김치 냄새를 풍겨댔고 그러한 날들은 아주 가끔 혹은 자주 일어났다.

도시락을 싸가는 날은 도시락과는 별개로 꼭 챙겨야할 것이 있었으니 바로 수저통이다. 수저통은 도시락의 구성품이 아니어서 그런지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는 수저와 젓가락을 가진 친구에게 도구 하나를 빌려서 먹는다. 대부분 흔쾌히 빌려주는 착한 친구들이었지만 숟가락과 포크 일체형을 식사 도구로 가진 친구에게는 차마 부탁할 수 없었다. 도시락을 챙겨가는 나도 잊어버릴 때가 많았지만 챙겨주는 엄마도 가끔은 수저통을 빼먹고 도시락만 건네주는 경우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점심시간이 되면 교실은 한정식 식당으로 둔갑한다. 앞자리 친구들은 뒤를 돌고 옆자리 친구는 의자를 끌고 와서 책상 한 가득 펼쳐 놓고 밥을 먹었다. 소시지나 햄 같은 반찬은 인기가 많아서 반찬 주인이 먹기도 전에 둘러앉은 친구들의 젓가락 스텝에 따라 빠르게 소진되어 버린다. 아예 자기 반찬통을 책상에 올려놓고 전체 아이들의 반찬으로 식사를 하는 원정 형 친구도 있었다. 어느 때는 옆 반에도 들러 오는 듯 했다.

철통 보안형 친구도 있었다. 도시락 구성품들을 책상에 올려놓기는 하되 뚜껑은 절대 열지 않는 것이다. 밥뚜껑 열어서 밥 한 숟갈 먹고 밥뚜껑 닫은 다음, 반찬 뚜껑 열어서 반찬 하나 먹고 반찬 뚜껑 닫는 과정을 식사 끝날 때 까지 반복한다. 대게 그런 친구들은 혼자 식사를 했다.

나는 주로 의자를 끌고 다니는 형이었다. 가끔은 앞자리 친구들이 뒤돌아 합석하는 경우도 있었다. 보온 도시락의 반찬은 흐트러지는 일이 거의 없었지만 양은 도시락의 경우 김치 국물이 밥으로 스며들어 빨간 색으로 일부 염색된 밥을 먹을 때도 있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반찬의 종류만 보아도 그 집의 살림살이를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사는 형편이 괜찮은 친구는 소시지나 장조림 같은 고급 반찬을 잘 사오지만 사는 게 빠듯한 친구의 반찬은 김치나 장아찌 종류가 많았다. 교실을 돌아다니며 식사를 하는 원정형 친구들 중 누구나 이용 가능하도록 펼쳐 둔 반찬은 거의 김치였다.

나는 펼쳐 놓고 먹기는 하되 주로 친구들의 반찬을 스틸하는 케이스였지만 딱 한 번 철통 보안을 한 적이 있다. 그 날은 이상하게 쿰쿰한 비린내가 도시락에서 스멀스멀 올라 왔다.

안 좋은 예감은 가끔씩 틀려도 좋겠거늘 역시나 좌절하게 만드는 그날의 도시락 반찬은 전날 저녁 반찬으로 먹었던 구운 갈치 조각이었다. 밥반찬으로 갈치는 더할 나위 없지만 그건 집에서의 이야기이다. 친구들이 보는 앞에서 갈치의 가시를 발라 먹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것이 왠지 수치스러움으로 느껴졌다. 게다가 비릿한 생선냄새는 신 김치 냄새보다 더 미간을 좁히게 만들었다.

반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마 내놓고 먹을 수 없었던 그 날의 기억은 요즘도 갈치를 한 번씩 구울 때 마다 떠오른다. 갈치를 싸준 엄마가 원망스러웠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먹는 것 보다 공부에 더 집중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양은 도시락의 반찬 용기는 전체 도시락 크기의 4분의 1정도 밖에 안 되었다. 밥의 양보다 반찬이 양이 적은 것은 용기 크기로 보아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밥 두 숟갈에 반찬을 한 번만 먹는다 해도 반찬이 부족한 듯해서 좀 더 싸 줄 수 없겠냐고 했을 때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니는 밥 무러 학교 댕기나? 니는 공부도 못하는 기 반찬에 신경 쓸 새가 어딧노?”

내가 처음으로 도시락을 싸게 된 것은 아마 딸아이가 유치원에서 소풍을 가던 날일 것이다. 워낙 입도 짧고 식사도 장시간으로 하는 아이라 쉽게 빨리 먹을 수 있는 메뉴로 준비했다. 그러나 선생님이 보내준 사진 한 장에 나는 뒷머리가 띵했다.

아이들의 식사하는 모습을 찍은 사진에는 알록달록 형형색색 꽃분홍 도시락들이 즐비했지만 딸아이의 도시락만 락앤락 통이었다. 딸아이에게 어울릴 만한 예쁜 도시락을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

이 후로도 나는 수없이 도시락을 쌌다. 아이들이 모두 초등학생이었을 때는 이틀에 한 번씩 쌀 때도 있었다. 학년은 달랐어도 현장학습 주간이 겹치면 오늘은 딸아이의 도시락을, 내일은 아들의 도시락을 준비했다. 도시락의 내용물도 많이 달라졌다. 도시락은 곧 김밥이었던 내 어린 시절과는 달리 신세대 엄마들은 도시락을 예술로 승화시켰다. 과일 한 조각을 담아도 멋스럽게 담고 김밥보다 더 간편하고 먹기 좋은 메뉴들이 많았다. 그런 메뉴가 담긴 도시락을 받는 아이들은 얼마나 신나고 좋을까 싶은 생각에 나도 한 번 도전했다. 삶은 메추리알에 검을 깨를 박고 홍당무 조각을 꽂아 오리를 흉내 내려 했다가 내 눈알이 빠질 뻔 한 아찔한 기억도 있다.

그러나 일주일에 닷새를, 특히 고3때는 두 개씩 도시락을 준비해야 했던 엄마 때와 비교하면 나의 도시락 이야기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것이다. 강산을 서너 번 바꾸고 나니 학교마다 급식실이 생겨서 이제는 굳이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게 되었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급식으로 식사를 해결했고 수저통을 반드시 챙겨가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어졌다. 어쩌면 밥보다 공부에 신경을 쓰라던 엄마의 면박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매번 고민해야 했던 도시락 반찬의 부담이 아니었을까. 손에 잘 잡히지도 않는 도시락 용기들을 매일 설거지해야 했고 오늘의 반찬보다 내일은 다른 종류의 반찬을 담아내고 싶었지만 여러모로 힘에 부치던 엄마의 지리멸렬한 고민의 표현이었을 수도 있겠다. 내가 엄마가 된 후에야 깨달았다.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위클리서울/ 김일경 기자

딸아이가 고3때였다. 어느 날 딸아이는 학교 급식이 너무 맛이 없어서 며칠을 굶었는데 도저히 배고파 안되겠더라며 한 달만 도시락을 싸달라고 했다. 순간 엄마의 말이 떠올랐다.

“니는 밥 무러 학교 댕기나? 니는 공부도 못하는 기 반찬에 신경 쓸 새가 어딧노?” 라는 말은 물론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엄마의 심정이 이해가 되었다.

반찬은 무엇으로 준비해야 하나, 매점에서 대충 먹고 말지 뭘 도시락까지 싸 달래…맛이 없어도 급식이 건강한 음식인데 그냥 참고 먹지… 등 생각이 맴돌았다.

어렸을 때 쓰던 꽃분홍 도시락이 전부라 보온 도시락부터 사러 가야 했다. 반찬도 신경 써서 매일 조금씩 다르게 담아 주었다. 김치는 국물이 옆 공간 반찬을 물들이지 않도록 랩으로 특별 포장을 했고 생선은 가시를 일일이 발라내어 먹기 좋게 한 입 크기로 담았다. 딸아이는 급식에 대한 입맛이 비슷한 친구들끼리 식사를 하는 듯 했다. 옛날 어느 교실을 한정식 식당으로 바꿔놓던 때처럼 다들 도시락을 펼쳐 놓고 말이다. 딸아이는 엄마 도시락이 짱 맛있다며 고맙다고 했다. 이런… 나보다 낫다. 나는 울엄마에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데 말이다.

이번 주말에 도시락을 싸야 한다. 이번에는 아들놈이다. 어라? 그러고 보니 이놈도 고3이네. 학원과 스터디카페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아들은 갑자기 증가하는 코로나19 확진자에 대한 우려 때문에 식당에 들어가기가 겁이 난다며 도시락을 싸달라고 한다.

‘아니, 니네는 내가 말만 하면 뚝딱 나오는 도시락 자판기로 보이니?’

물론 혼잣말이다. 다행히 큰아이가 쓰던 도시락이 있으니 반찬 걱정만 하면 되겠다.

이동 중에 식사를 해야 하므로 차 안에서 간단히 먹을 수 있는 볶음밥이 좋을 듯하다.

도시락을 준비하면 엄마가 생각이 난다. 어려운 살림에 힘겨웠을 엄마의 수고로움은 아이들 덕택에 이제야 깨닫는다. 끝까지 도시락을 책임져 준 엄마의 정성을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쏟아 낸다. 도시락은 돌고 도는 엄마의 정성이다. <김일경 님은 현재 난타 강사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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