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의 가난한 희망 ‘연극 이기동 체육관’
가난한 자의 가난한 희망 ‘연극 이기동 체육관’
마 코치 - 이연희 스파링 파트너로 서다. “내게 마지막 링은 아직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현희 - 아버지는 스승이며 우상이다. “우리 아버지만한 스승이 생각나지 않았어”
  • 김현동
  • 승인 2011.12.10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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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의 가난한 희망, 연극 이기동 체육관
평범한 사람이 외치는 평범한 희망




[2011년 12월 10일] - 늘 술에 취해 있고, 밤마다 술을 찾아 돌아다니는 그는 무시하는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 않고 꿋꿋이 참았다. 변변한 대회 우승 트로피 한 번 거머쥐지 못한 그를 사람들은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무시했다. 그런 시선조차도 마 코치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그에게는 하루하루 삶이 곧 경기다. 패배자라는 팻말에 삶이 짓눌린 마 코치는 오늘도 체육관에서 신입단원만 기다리는 문지기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그러던 마 코치에게 희망을 준 것은 이기동 체육관 관장의 딸 이연희다. 프로 데뷔 시합 60일을 앞둔 이연희가 마 코치를 스파링 상대로 지목한 것. 이연희 대적 상대가 왼손잡이 아웃복서로 정해진 상황에서 때마침 마 코치가 아웃복서 이었기에 적임자였다. 경기를 앞두고 변변한 권투 교육조차 제대로 받지 못한 이연희. 그에게 이기동 체육관에서 무능한 사람을 취급 받던 마 코치는 유일하게 배울 수 있는 대련 상대이자 코치였다.

마 코치에게도 이건 기회였다. 그동안 자신이 못다 이룬 승자라는 미련을 이제 끊고, 선수가 아닌 후배 양성에 힘을 쏟고 싶었다. 너무 늦은 나이. 아직도 귓가에 들리지 않는 마지막 링을 알리는 종소리. 그는 단 한 번도 경기 마지막 까지 링 위에서 제대로 서 있어본 기억이 없다. 그것은 평생의 한으로 남았다.


마 코치 - 이연희 스파링 파트너로 서다.
“내게 마지막 링은 아직 울리지 않았습니다.”
이현희 - 아버지는 스승이며 우상이다.
“우리 아버지만한 스승이 생각나지 않았어”


아무도 없는 불 꺼진 체육관에서 들리는 거친 숨소리. 창문을 통해 어스름하게 비추는 불빛에 사람의 실루엣이 보인다. 누군가가 링 위에서 뛰고 있다. 대련 상대가 없는 링 위에서 홀로 외롭게 자신만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그는 이기동 관장에게 하나 남은 딸 이연희다.

그녀는 늦은 밤마다 아무도 모르게 연습을 해나갔다. 60일 앞으로 남은 프로 데뷔 시합. 전력을 다해도 부족하지만 그녀에게 허가된 시간은 늦은 새벽뿐이다. 동시에 그 누구의 시선에도 띄지 않아야 하며 그녀를 알아보는 이가 없어야 하는 까다로운 조건이 충족되어야만 마음 편히 연습할 수 있다. 알고 보니 말 못할 사연이 있다

연습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 같았다. 마 코치가 입을 가볍게 놀리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신입단원인 시간강사 이기동이 이연희가 관장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말았다.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자신이 늦은 새벽 프로데뷔를 앞두고 연습을 하는 모습이 아버지의 귀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왜냐고? 이기동 관장은 이연희의 권투 시작을 원치 않았다. 아니 강력하게 반대했다. 고집은 완고했고, 이연희는 평범한 가정주부로써 살아가는 편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연희는 그럴 수 없다. 늘 혼자였던 그녀의 어린 시절. 더는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겠다며, 30살의 나이에 자신의 인생을 프로선수 데뷔에 건다.


이기동 관장 - 최고의 권투선수에서 내리막길을 걷다.
“피아노, 공부. 그런 건 있는 놈들이나 하는 거라고”


좀처럼 입을 여는 법이 없다. 체육관을 어슬렁거리며 자신의 모습만 비추는 그는 80년대 최고의 권투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이기동 체육관 관장 이기동 선수다. 하지만 지금의 이기동은 늙고 힘없는 노인에 불과했다. 동시에 경기 후유증으로 더는 운동을 지속할 수 없는 환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를 괴롭히는 것은 장애도 나이도 아니었다. 하나뿐인 아들을 자신이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이 그를 짓눌렀다.

그에게는 한 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이 있었다. 지금 곁에는 한 명의 딸밖에 없다. 아들 이름은 이주승. 아들은 피아노를 좋아했다. 이기동 관장은 아들의 뜻을 끝내 반대했고, 아들은 아버지의 끝을 이기지 못하고 권투선수의 길로 접어든다. 이기동 관장은 아들이 80년대 권투 세계를 뒤 흔들었던 자신의 모습을 재현시켜주기를 바랬다. 하지만 아들은 경기 중 차디찬 시신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들을 떠나보낸 이기동 관장. 체육관 한 편에는 피아노가 있다. 아들을 자신이 떠나보냈다는 죄책감에 차마 버리지 못한 물건이다. 사실 그는 아들이 그렇게 떠나자 권투와 관련된 기억을 다 지우기 위해 모든 물건을 다 버렸다. 동명이인이자 이기동 관장의 팬인 시간강사 이기동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다 버린 줄 알았다.


시간강사 이기동 - 20년 전 내게 글로브 준 선수가 내겐 영웅
“내 시간은 정지해 있습니다. 전 시간 강사니까요”


5살 꼬마 이기동은 TV에서 자신과 이름이 같은 권투선수 이기동에게 한 켤레의 글러브를 전달 받는다. 당시 받은 글러브는 권투선수 이기동의 마지막 시합 때 사용했던 것. 그로부터 20년이 지난 이기동은 시간강사로 일하지만 당시 글러브를 소중히 간직하며 권투를 배우겠다는 꿈을 실행에 옮긴다.

허름한 이기동 체육관에 들어선 그는 한 눈에도 부족해 보인다. 반면 의지만은 충만. 현금 2만원을 내고 이기동 체육관에 신입단원 명부에 이름을 올리면서 한 달간 열심히 운동을 하지만 그토록 보고 싶었던 이기동 관장은 좀처럼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날 밤.

깜박 잊고 두고 간 가방을 찾고자 들린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링 위에서 뛰고 있는 사람. 나중에 알고 보니 이기동 관장의 딸 이연희란다. “안녕하세요” 어설프게 인사를 건넨 시간강사 이기동. 어쭙잖은 인사말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 이연희 선수. 무안함도 잠시 술에 취한 그는 자신의 우상인 이기동 관장에 대해 존중하고 있다는 의사를 밝힌다.

그에 비하면 자신은 시간강사라는 타이틀에 얽매여 초라하다고 한탄한다. 한때 복싱 계를 뒤 흔들던 이기동 관장처럼 되고 싶다는 바람을 수줍게 고백하는 시간강사 이기동. 하지만 다음날 체육관은 전과 다른 분위기다. 마 코치도 없고, 그 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기동에게 체육관은 아직도 어렵기만 하다.


평범한 사람이 외치는 평범한 희망.


총 8명 캐릭터. 저마다 개성 넘치는 인상과 각기 다른 직업에 종사하는 8명이 연극 이기동 체육관에 등장한다. 이기동 관장의 깐깐한 성격을 잘 보좌하는 마 코치, 이기동 관장의 딸 이연희, 이기동 관장의 팬인 시간강사 이기동 외에도 전학 간 학교에서 두들겨 맞고 분을 삭이지 못해 권투를 배워야 갰다고 마음먹은 다혈질 여고생과 다이어트 때문에 체육관에 나오게 된 노처녀 마지막으로 로봇을 좋아하는 노총각이 이기동 체육관을 이끌어 나간다.

이들은 서로의 아픔을 감싸고 고민을 들어주는 과정을 통해 체육관을 땀 흘리며 운동하는 공간이 아닌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로 이끌어 나간다. 이 과정에서 지난 과거에 겪었던 아픔을 용기로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갈 용기도 얻는다. 시간 강사 이기동도 그랬다.

시간 강사라는 보잘것없는 직업을 가진 자신이 늘 부족하게만 보였던 이기동은 강의 없는 시간은 늘 멈춘 것만 같은 죄책감에 살았다. 그리고 이기동 체육관에서 열심히 살아보기 위한 희망을 찾는다. 여기 까지는 주요 내용에 불과하다. 이기동 체육관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은 이기동 관장의 극복기와 마 코치의 소망이다.

한때 복싱계의 살아있던 전설이던 이기동 관장. 그리고 이기동 관장처럼 되고자 했던 마 코치. 두 사람의 인생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실타래와 같다. 욕심으로 아들을 떠나보낸 이기동과 단 한 번도 우승컵을 받아본 적 없는 마 코치. 두 사람에게 인생은 너무도 힘들고 가혹한 실연으로 다가왔다.


나와 너 그리고 함께 어울리는 우리


오랜 시간 마음의 문을 닫은 이기동 관장과 마 코치. 외로움이라는 공통점으로 만나게 된 노총각과 노처녀. 복수해야 갰다는 마음으로 체육관에 입단한 여고생도 이기동 체육관에서 인생의 목표를 새롭게 정한다. 30이라는 늦은 나이에 새롭게 인생을 설계한 이기동 관장의 딸 이연희도 마찬가지다. 그녀에게는 영웅이던 아버지의 몰락. 오빠의 죽음 하지만 그녀도 이제 아버지에게 주목 받고 싶었다.

이기동 체육관에 등장하는 이들은 꿈을 꾸고, 꿈에 다가가기 위해 애써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많은 이가 쓴 잔을 마시고 고뇌하고 다시 도전했다. 이기동 체육관에 발을 들여놓은 이들도 처음에는 그랬다. 하지만 사회가 그들에게 요구하는 벽은 너무 높았다. 자칫 버림받을 위기에 놓였지만 슬기롭게 해쳐나간다. 그 해답은 단순했다. ‘우리’라는 단어였다.

체육관이라는 무대와 링 위에서 펼쳐지는 곡선 그리고 배우들의 개성 넘치는 연기. 좀처럼 보기 힘든 생소한 복싱이라는 것을 기반으로 펼쳐지는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지는 연극 이기동 체육관. 특히 연극 끝에서 멈춰 있던 시계가 다시 돌아가는 순간은 이기동 체육관에서 단연 빼놓을 수 없는 하이라이트다.

시계가 멈추어 버리듯 모두에게 잊혀 있던 희망. 하지만 다시 희망이라는 것에 도전해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아무것도 바랄 수 없었던 체육관에서 단원은 꿈과 목표를 새롭게 정립하고 꿈에 한 발 다가간다.

이는 마치 권투라는 투박한 소재를 가지고 소주잔에 담긴 우리네 인생처럼 풀어나간 느낌이랄까! 너무도 ‘술술술’ 풀어나간 연극 탓인지, 연극 이기동 체육관을 관람하고 나면 한잔 술이 생각난다. 그래서 인지, 연극 시작 전에 서 대리가 공연장 근처 호프집을 홍보하는 센스가 더욱 돋보인다. 당일 티켓을 가지고 가면 마른안주가 공짜라던가!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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