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포세대의 슬픈 자화상! 연극 철수영희
다포세대의 슬픈 자화상! 연극 철수영희
서울 하늘 아래 내 집은 신월동 옥탑방
취직도 취집도 거부당한 두 청춘남녀의 빛바랜 인생사
무기력과 비정규직, 내 뜻도 아닌데 내 잘못 같아
  • 김현동
  • 승인 2010.10.0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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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포세대의 슬픈 자화상! 연극 철수영희
취직도 취집도 거부당한 두 청춘남녀의 빛바랜 인생사




[2010년 07월 05일] -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온 당신에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혹시 그대도 “서른이 된다는 것은, 서른 이후의 삶도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는 말에 동의하는가? 만약 동의한다면 더 늦기 전에 삶을 돌아보라고 권유하고 싶다.
혹자는 ‘10대에 꿈을 꾸고 20대에 준비하여 30대에 영향력을 발하는 인생이 되라’고 하지만 의미 없는 메아리에 그치는 것이 오늘날 현실이다. 20대란 세상을 향해 두발 쭉 뻗고 젊은 혈기와 결코 지지 않는 패기를 앞세워 나아가야 할 시기임이 틀림없다. 무서움을 모르는 나이이기에 다소 무모하다고 할 수 있는 도전도 과감히 행동에 옮기는 젊음은 모두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곤 한다. 하지만 똑같은 20대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불과 1년 남겨둔 스물아홉이 조바심과 두려움만 교차하는 시기로 점쳐진다.

작가 기미월의 장편소설 ‘여덟 번째 방’에서는 20대의 세상사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여기서 누군가 웃으면 저기서는 누군가 울고 있는 웃음과 눈물의 양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공간. 같은 20대라도 처한 상황에 따라 받아들이는 의미가 제각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다르게 보면 지금 누리고 있는 나의 행복은 누군가의 불행에서 나온다는 것과도 같은 맥락이다. 따지고 보면 연극 철수영희에 나오는 두 주인공의 삶도 그렇다. 아무리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나올 수 없게 단단히 옮아 죄는 두 주인공의 희망 없는 삶. 이렇게 되기까지 달콤한 행복만을 회상하며 현 자리에서 안주했던 것은 아니다.


10년을 살았다. 벗어날 수 없는 삶.


강산이 바뀌어도 서너 번은 바뀔 10년을 버틴 주인공 영희. 여름이면 각종 날벌레로 살충제를 달고 다녀야 하고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흘러내리는 무더위로 밤잠을 설치는 일상의 연속, 겨울이면 코끝을 스치는 매서운 추위도 부족해 입김이 하얗게 올라오는 겨울 혹한기를 제대로 체험하게 해주는 옥탑은 그를 놔주지 않았다.

TV를 통해 봐온 옥탑은 로맨스 넘치며 낭만적인 일상의 연속이기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은 곳. 천만에! 실상은 기회만 주어진다면 당장에라도 이곳을 벗어나고 싶은 그런 옥탑. 하지만 바람은 요원하기에 오늘도 자포자기로 옥탑방 생활에 전념한다.

시내가 훤히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 자칭 로열층이라고 자신했건만 내심 이웃이 없기에 외로운 것은 사실. 그런데 옆집 옥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이름은 ‘철수’. 볼품없는 외모에 초라한 행색 그리고 아담한 키. 마음에 드는 구석이 한 곳도 없는 그야말로 후텁지근한 인상이다.

문제는 언제부터인가 저 사람이 은근히 신경 쓰인다. 처음에는 이웃이 보내는 호기심이라고 치부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닌 것 같다고 느끼는 영희. 저 사람은 좁은 방에서 무슨 생각을 할까? 답답하다고 느끼지는 않을까? 나처럼 외로움을 느낄까? 10년간의 고독이 적절히 녹아있는 푸념을 털어놓는 영희. 옥탑에 살지만, 연예는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각오한 것일까! 하지만 그녀는 뼈아픈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스물아홉의 철없는 철부지 청년 철수.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하고 급기야 주식까지 손을 대지만 실패하고 돈에 쫓겨 옮겨온 옥탑에서 우연히 영희와 마주친다. 하지만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점차 세상에서 고립되어 가는데. 더 넓은 세상으로 발을 내딛지 못하고 옥탑이라는 공간이 전부가 되어버린 철수. 자신만의 공간에서 자신감마저 상실해버린 그가 세상을 향하는 길은 옥탑을 벗어나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이다. 영화라는 뚜렷하지 않은 이상만을 품고 살아온 그에게 스물아홉이라는 나이는 덧없이 보낸 세월의 숫자에 불과하다.

이를 바라보는 영희 눈에 철수는 무능력자에 불과하다. 따지고 보면 그 둘은 별반 다를 게 없다. 하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다르다고 평가한다. 네가 더 못났네, 내가 더 잘났네 하면서 말이다. 스스로에 대해 그렇게 모를까 하고 답답하기만 하다.


현실과 타협해야 하는 나이, 하지만 여유가 없다.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시대의 그늘을 대변하는 연극 철수영희. 연극 속 주인공은 자칭 공한족(恐閑族)이다. 변변한 직장도 없는 백수에 불과하지만, 회사원보다 더 바쁜 일상을 보낸다. 주말에는 결혼식 아르바이트까지 겸한다. 그렇지만 둘을 설명하는 단어에 백수 외에는 어울리는 것이 없다.

그래도 자칭 전문직 종사자다. 철수는 영화감독, 영희는 은행원. 그렇게 보낸 세월이 10년이다. 주변에서는 허송세월이라고 말하지만 두 사람에게는 가장 행복한 한 때였다. 그리고 지금은 가장 불행한 한 때는 보내고 있다. 이 시기가 지나가면 다시 행복이라는 것이 곁으로 돌아올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스물아홉이 되고 보니 나이에 대해 더욱 예민해지는 두 주인공. 현실과 이상에서 선택하라면 두 사람은 방황을 선택해버린 셈이다. 그리고 옥탑이라는 좁은 세상에서 그들만의 자아실현을 꿈꾸고 있다. 연극 속 철수는 혼자만의 세상에서 자위실현에 힘쓰는 게 일상이 되고 말았지만 말이다.

옥탑이라는 공간을 이용해 20대 청춘의 답답한 심정을 표현한 연극 철수영희. 극 중 마지막에 철수는 그토록 두려워하던 고소공포증을 극복하고, 10년 만에 처음으로 스스로가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은 영희는 자신에게 선물을 준다. 그리고 결코 사회로 나갈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철부지 스물아홉 청년 철수영희가 세상과의 타협을 시도한다.

젊다는 것은 더 많은 기회를 노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20대의 끝자락에 선 스물아홉의 철수영희에게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현실에서 도피한 것은 아니지만, 세상은 두 사람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붙은 것은 무능력자라는 팻말뿐. 오늘날 이태백과 다를 바 없다.

백수, 청년실업, 비정규직이란 말들이 너무 익숙한 요즘, 그들의 이야기가 한 편의 연극 소재로 완성돼 올랐다.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하는 연극 ‘철수영희’ 는 너무 적나라해 보는 이를 마음아프게 만드는 작품이다.


By 김현동 에디터 cinetiq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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