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과 학폭 고발,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았다
미투 운동과 학폭 고발, 공소시효는 끝나지 않았다
  • 김신강
  • 승인 2021.02.2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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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27일] - 국가대표 출신의 배구선수 이재영, 이다영 자매(흥국생명)로부터 시작된 학교폭력(학폭) 고발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발단이 된 이다영 선수의 SNS에서 이 선수는 “갑질”, “나잇살 먹고”, “내가 다 터뜨릴꼬얌” 등의 발언을 연달아 올렸다. 선배 김연경 선수를 겨냥한 글이라는 의혹이 곳곳에서 나왔다고 김 선수가 직접 팀 내 불화가 있다고 시인하며 사건은 수면 위로 올라왔다.


선후배 간의 불화 정도로 여겨졌던 이 일은 지난 7일 이다영 선수가 갑작스레 ‘극단적 선택’ 운운하는 소문과 함께 입원을 하고, 이튿날 이다영과 이재영이 학교 폭력을 저질렀다는 폭로 글이 커뮤니티에 올라오며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전환됐다.

자매는 학폭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사과했으며, 국가대표 무기한 자격 박탈과 잔여 시즌 출장 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이다영 선수가 ‘피해자 코스프레’를 해 오는 동안 정작 폭력의 가해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자 여론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두 선수는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배구선수임에 틀림없지만 선수 생명 자체가 기로에 서 있다.

이 사건 이후 학폭 고발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다. 배구, 야구, 축구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여기저기서 터지더니, 최근에는 인기 연예인들의 학창 시절 급우들의 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쉬쉬하던 폭력 뒤늦게 수면 위로, SBS는 가해자 옹호하기도


삼성화재 소속 남자 배구선수 박상하는 학폭을 인정하고 은퇴 선언을 했고, 드라마 ‘경이로운 소문’으로 라이징 스타로 한창 주가를 올리던 조병규는 출연 중인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차하기로 결정했다. 순수한 이미지로 인기를 모으고 있던 배우 박혜수도 한창 논란이 뜨겁다. JYP 소속 스트레이키즈 현진도 활동 직전에 제동이 걸렸다.

하지만 작년 까지만 해도 덮거나 조용히 마무리하려던 분위기가 만연했다. 심지어 공중파는 가해자를 감싸기까지 했다. SBS 전연남 기자는 빗나간 부정이라는 제목으로 가해자가 행한 2년간 학폭을 옹호하며 비난을 자처했다. 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해당 기자를 향한 비난은 계속되고 있다. 이랬던 여론이 불과 1년 사이에 뒤바뀐 것이다.

용기 있는 고발자가 물꼬를 트고, 마치 유행처럼 여기저기서 유사한 폭로가 이어지는 모습은 흡사 3년 전 들불처럼 일었던 ‘미투 운동’을 연상케 한다.

2018년 1월 30일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 성추행 폭로는 그야말로 사회 전체에 충격을 안겼다. ‘검사’라고 하는 상징적인 사회적 지도층에 소속된 이가 성추행 피해자였고 몇 년간을 참고 버티다 언론에 기대어 구원을 요청하는 모습은 무력감마저 느껴지게 했다.

가해자로 지목된 안태근 검사는 직권남용 혐의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지만 끝내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복직에 이른다. 하지만 주요 혐의인 성추행은 시효가 이미 지나 의미가 없었다. 결국 세간의 예상(?)대로 성추행에 대한 경종을 울린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서지현 검사의 고발 이후 사회 분위기는 완전히 바뀌었다. 미투 운동의 여파로 안희정, 오거돈 등 유력 정치인이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졌으며 조재현, 고 김기덕, 이윤택 등 유명 배우나 감독들의 커리어도 사실상 끝이 났다. 특히 가장 큰 충격을 안겨줬던 내용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조민기의 경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미투 운동도, 학폭 고발도 무고의 위험을 안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도 않은 일로 사회적으로 매장돼 지금까지도 고통을 호소하는 이들도 많다. 확실한 것은 이번 연이은 학폭 고발 사태는 돈 있고 힘 있는 자가 부당하게 지배하는 ‘권력 이상의 권력’을 부리는 행태가 끝나간다는 명징한 사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그 출발선에는 물론 많은 것을 잃을 각오를 하고 용기를 낸 피해자가 있겠지만, 온라인이 가져온 정보의 평등이라는 사회적 변화가 미친 영향도 대단히 크다. 사회적 관계는 오래전부터 온라인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

때늦은 반성이라도 필요, 피해자는 여전히 그날을 기억한다


학교가, 회사가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만들어주는 오프라인 ‘지인’과 달리, 온라인은 공통 관심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모이기 때문에 집단적인 공감 능력이 뛰어나고 특정 화제의 확산 속도도 오프라인보다 훨씬 빠르다. SNS ‘맞팔’ 관계는 단순히 구독 개념이 아니라 오늘날 ‘친구’의 의미에 가깝다.

여론 재판이라는 위험성을 갖고 있지만 오랫동안 힘이 없어서, 유명하지 않아서 무력감을 가지고 살 수밖에 없었던 피해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환경이 커뮤니티와 SNS의 발달로 만들어졌다. 아무도 모르는 사람도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려면 어쩔 수 없이 이 운동은 유명인들을 타깃으로 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유명한 사람들이 억울해할 일은 아니다. 이제는 영향력을 가진 자리에 가려면 그만큼 어릴 때부터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야 한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에 대한 사회적인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이번 연이은 학폭 고발 사태는 지금도 어딘가에서 학교폭력으로 시달리고 있을 어린 학생들에게 분명히 회복의 기회를 줄 것이다. 가해 학생들은 지금 이 폭행이 나중에 어른이 되었을 때 어떻게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지 모른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의 훈계, 부모님의 체벌은 그때만 넘기면 된다고 안일하게 생각했을지 모르나, 초등학생 때의 폭력조차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법적 공소시효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피해자의 정신적 피해에 대한 공소시효는 어쩌면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 있다.

미투 운동도 마찬가지다. 불필요한 논란과 부작용이 분명히 있지만, 미투 운동 이후 직장 내 성희롱은 확연히 줄었다. 사회 전체가 조심하는 분위기가 생겼다. 그것이 설령 “치사해서 안 한다”는 마음일 지라도 말이다.

서로 전혀 알지 못하지만 동질감을 가지고 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온라인 중심의 사회는 약자에게 약자가 아닐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있다. 강자는 겸손한 강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회적 책임의식을 부여하고 있다. 소위 사회 지도층이란 사람들이 내로남불 하며 약자를 무시하고 나는 괜찮다는 생각으로 살아가던 시대가 끝나간다. 서지현과 이다영, 두 사람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사회의 물줄기를 바꿨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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