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성 ‘제로’ 웨이스트 운동, 정부 규제는 이미 뒷걸음
현실성 ‘제로’ 웨이스트 운동, 정부 규제는 이미 뒷걸음
  • 김신강
  • 승인 2021.02.17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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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2월 17일] - 코로나19 이전부터 우리나라의 큰 골칫덩어리 중 하나가 플라스틱 쓰레기다. 바다 한가운데 여의도 면적보다 큰 플라스틱 섬이 떠다닌다. 공상과학영화 속의 내용이 아닌 오늘날의 현실이다. 그 쓰레기를 모르고 섭취한 해양동물과 동물 사체에는 플라스틱 쓰레기가 가득했다.


더욱 미세하게 분해되어 이제는 인간을 향했다. 우리가 마시는 음식에 플라스틱은 아직 등재되지 않은 몹쓸 영양소(?)가 공존한다. 눈에 안 보일 정도로 작은 조각이니 거르기도 여의치 않고, 그대로 두면 더욱 작은 알갱이로 진화한다. 편리함에 익숙한 나머지 정작 중요한 것을 외면한 대가를 뒤늦게 치르는 모양새다.

작년 1월 유럽플라스틱제조자협회(EUROMAP)가 발표한 플라스틱 사용량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조사 대상 63개국 중에 세계 2위를 기록했다. 2015년 기준으로 1인당 연간 약 62kg의 포장용 플라스틱을 사용한다고 하니, 코로나19 이후로는 몇 배가 늘었을지 짐작조차 어렵다.

엎친 데 겹친 격으로 중국이 플라스틱 폐기물 수입을 전면 금지하면서 어디 내보낼 데도 마땅치 않다. 가뜩이나 작은 나라가 스스로 만든 플라스틱 쓰레기에 파묻힐 지경이다.

야외활동이 힘들어지자 어쩔 수 없이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양이 급격히 늘었다. 정부 역시 국민들이 나가서 병에 걸리는 것보다는 일회용품을 쓰더라도 집에 있는 안전이 중요하다고 판단, 가급적 플라스틱 규제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정부는 코로나19가 1년 넘게 계속되고 플라스틱 쓰레기를 도저히 감당할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 결국 플라스틱과 1회용품 규제만 확대하기로 했다. 정작 우리가 보는 시선과 다른 엇박자 행보가 이번에도 시작됐다. 환경부는 15일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촉진에 관한 법’ 및 하위법령 개정안을 3월 20일까지 입법 예고한다고 밝히고 관련 검토에 들어갔다.

일회용 컵 보증금제가 도입되어 ‘테이크아웃’을 하면 오히려 커피값이 비싸지게 되고, 커피전문점 및 음식점 내에서 종이컵, 플라스틱 빨대, 젓는 막대의 사용이 금지된다. 대형 마트에서 사용이 금지돼 왔던 비닐봉지는 제과점에서도 금지된다. 대형 점포에서는 비가와도 우산 비닐을 사용할 수 없다. 잘 털어야 한다.

그러나 이 개정안은 내년 6월에나 시행된다. 그리고 이런 보증금 규제로 플라스틱 및 일회용품 쓰레기가 얼마나 줄어들지도 의문이다. 우리는 그간 그냥 불편하기만 하고 아무런 효과가 없는 정책을 얼마나 많이 경험해 왔던가.

하지만 대안은 민간을 중심으로 장려되는 추세다. 사실 정부 당국이 조금만 관심을 가졌더라면 비효율적인 시행 책에 세금 들여 연구하고 뒤늦게 대책이랍시고 내놓는 시늉이 조금이라도 현실적으로 되었을 가능성을 무시 못 한다.

그 점에서 주목 받는 것은 민간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난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다. 생활 속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최소화하자는 사회운동이다. 단순히 일회용품의 사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아예 쓰레기를 만들지 않는 것까지 지향해 보자는 적극적인 캠페인이다. 모든 제품을 재사용할 수 있는 것들로만 사용하려 노력한다.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사실 신조어가 아니다.

이미 1998년부터 2002년까지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으며 한 번 정점을 찍었던 바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개념이지만,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양 사회에서는 ‘제로 웨이스트 라이프스타일 운동’까지 일어날 정도로 큰 열풍이 일었다.


특히 샌프란시스코는 제로 웨이스트 목표를 설정하고 구체적인 수치를 달성하기 위해 시민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정부가 애써 국민들을 독려하지 않아도 플라스틱 폐기물의 증가를 주위에서 너무나 쉽게 발견하고 체감할 수 있는 상태가 되자 각 개인이 스스로 심각성을 직관적으로 느끼면서 자연스럽게 일어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제로웨이스트 샵’이라는 개념도 등장했다. 서울 성수동에 위치한 ‘더 피커’는 고객이 직접 가져온 용기에 포장 없이 친환경 식자재를 구매할 수 있는 곳이다. 식자재 뿐 아니라 평소에 생각 없이 사용했던 일회용품을 대체할 수 있는 다회용품을 다채롭게 준비해 ‘개념 소비’를 돕는다.

‘지구샵’은 플라스틱을 대체할 수 있는 상품, 비닐/플라스틱/포장이 없는 상품, 여러 번 반복 사용할 수 있고 견고하여 오래 쓸 수 있는 상품 등의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제품을 소싱하는 편집샵이다. 브랜드의 콘셉트나 타깃 고객, 카테고리 등이 기준이 아니라 얼마나 환경을 보호하는 제품들인가 하는 것이 중요한 잣대가 된다.

영국 뷰티 브랜드 ‘러시’가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샴푸 바의 인기도 부쩍 높아졌다. 러시는 이미 창립 초기부터 일반 플라스틱에 들어 있는 액체 샴푸와 고체 형태의 샴푸 바를 동시에 판매해 왔다. 최근에는 액체 샴푸 라인업을 대폭 줄이고 고체 샴푸 바의 라인업을 2배 가까이 늘렸다. 게다가 빈 통을 모아 가져오면 교환하는 정책도 시행한다. 버려지는 자원을 생산자가 직접 수거하는 움직임은 국내 대기업이 외면하는 실정에서 외국 기업이 나서고 있는 형국이다.

아직은 미비하지만, 국내 역시 ‘톤28’, ‘동구밭’ 등 신생 브랜드들의 샴푸 바가 제로 웨이스트 열풍을 타고 급격히 인지도와 판매량이 느는 추세다. 정부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라는 점에서 제로 웨이스트 운동은 주목을 받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운동에 힘입어 일자리 창출도 덤이다. 동구밭은 몸이 불편한 이를 고용해 사회 진출에 앞장서 왔다. 시작은 단순했지만 이를 통해 유발하는 효과는 기대 이상의 성과로 이어지는 추세다.

단순한 몇몇 개인만의 자각이 아니다. 환경 문제는 일부 서양 선진국에서나 신경 쓰는 문제로 치부 당하던 시각도 분명 일부 있었지만, 이제는 한국 역시 청년층 중심으로 이 문제를 심각히 여기는 것 또한 고무적인 일이다. 기꺼이 불편할 ‘각오’가 되어있는 사람이 늘어간다. 따지고 보면 불편함보다는 당연시 여겨야 했던 일이, 심각성이 불거지자 뒤늦게 공감대를 형성하는 추세다.

그 점에서 한발 먼저 나아가고 예측했어야 했던 공무원 조직은 늘 여유롭다. 그마다 서울시를 비롯한 지자체가 제로 웨이스트 알리기에 주목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 데 의미 있는 이바지를 할 수 있을까. 제로 웨이스트는 남의 일이 아니라 바로 ‘내 일’이라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응원의 대상이 아니라 실천의 대상이다. 우리는 자각하지 않는 사이 너무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소모하고 배출해왔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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