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주하는 자극적 유튜브 채널, 천민 자본주의의 노골적 자화상
폭주하는 자극적 유튜브 채널, 천민 자본주의의 노골적 자화상
  • 김신강
  • 승인 2020.12.21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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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1일] - 작년 말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공동으로 조사한 ‘2019년 초, 중등 진로 교육 현황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이 희망하는 직업 3위에 크리에이터가 올라 눈길을 끌었다. 특정 서비스명을 구체적으로 거명할 수 없어 크리에이터라 했지만 사실상 ‘유튜버’를 지칭한다.

중학생, 고등학생들의 경우 희망하는 직업 상위 20위 내에 크리에이터가 들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튜버들이 어린 초등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지대한지 간접적으로 짐작된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TV 예능이나 드라마는 거의 보지 않는다. 네이버 웹드라마, 카카오 TV, 나아가 넷플릭스 등의 OTT 서비스도 즐기지 않는다. 사실상 유튜브가 절대적인, 사실상 유일한 콘텐츠 소비 경로다.

#선 넘는 유튜버, 돈 되는 콘텐츠의 법칙!


수십, 수백만의 구독자를 보유하고 있는 유튜버들은 유명 배우나 가수보다 훨씬 높은 영향력을 갖는다. 그들의 세계관과 가치관, 던지는 말 한마디가 어린 학생들의 거울이 되고 선망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유튜버들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들려오는 이야기, 드러나는 사건들은 안타까움과 민망함을 넘어 깊은 우려와 부끄러움을 낳고 있다.


최근 몇 달 동안은 유명 유튜버들의 ‘사과 열풍’이 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달 3일 스타크래프트 프로게이머 출신 유명 유튜버 BJ철구는 생방송 중 한 여성 BJ가 “홍록기를 닮았다”라고 말하자, “박지선은 X지세요”라고 답해 파문이 일었다. 불과 얼마 전 스스로 목숨을 끊은 연예인의 외모 비하 발언에 논란은 일파만파 커졌다.

논란에 기름을 부은 것은 방송 이후 철구의 태도 때문이었다. 그는 5일 만에 사과 방송을 하며 삭발을 감행했다. 진정성을 보여주겠다는 의도였겠지만, 방송 내내 웃음기를 띄우며 장난기 어린 코멘트를 계속하는 그의 모습에 안 하느니만 못한 사과방송이 됐다.

게다가 또 다른 유명 유튜버인 그의 아내 외질혜가 “주접떨지 마라. 어차피 다시 잠잠해질 거다”라는 발언까지 더해지며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누리꾼들은 부부의 딸이 인천의 한 사립초등학교에 입학한다는 소문에 그 초등학교에 항의 전화 및 악의적 댓글을 쏟아부었다. 철구는 논란 이후에도 아랑곳없이 방송을 이어가고 있다. 구독자는 오히려 늘어 150만 명에 육박한다.


음식 유튜버인 하얀트리는 음식을 재사용하는 무한리필 간장게장 식당을 고발한다는 영상을 올렸다. 그는 게장을 개인 접시에 덜어서 먹지 않고 바로 밥을 비벼 먹은 후 리필을 요구했는데, 리필된 게장에 남은 밥알을 가지고 음식을 재사용했다고 주장했다.

해당 영상은 단기간에 100만 조회 수를 넘기며 큰 주목을 받고, 네이버 등 포털에서 해당 간장게장 가게는 평점 테러를 당하고, 식당 상호를 검색하면 재사용이라는 단어가 연관 검색어로 등장할 정도로 낙인이 찍혔고, 급기야 언론에도 보도된다.

해당 가게는 손님 방문이 끊어져 무기한 휴업에 들어갔다. 허위 방송에 대해 뒤늦게 하얀트리는 사과 방송을 했지만, 자신의 입장만 합리화하는 수준이었고 음식점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과는 없었다. 그는 그 이후로 다른 콘텐츠로 방송을 지속하고 있다. 구독자 수는 65만 명에 육박한다.

#철구처럼 논란 이후 구독자는 늘어만 간다.


인기 먹방 유튜버 쯔양의 경우 ‘뒷광고’ 논란으로 지난 8월 은퇴를 선언한 뒤 3개월 여만에 복귀해 진정성 논란을 일으켰다. 당시 유명 유튜버들이 광고임을 명확히 밝히지 않고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찬양 일색의 방송을 해 시청자들을 기만했다는 논란이 일었다.

무려 400만 구독자를 보유한 보겸을 비롯해 나름TV, 상윤쓰, 엠브로 등 물의를 빚은 유튜버들이 잇달아 사과 영상을 올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검은색 섬네일, 검은색 옷, 초췌한 노메이크업, ‘죄송합니다’라는 똑같은 제목으로 형식적인 제스처만 취했다.

쯔양의 경우 상대적으로 뒷광고의 정도가 작았고 빠른 사과를 하였음에도 공격적인 악플이 이어지자 은퇴를 선언했고 복귀를 예상하며 비아냥대는 댓글에 “절대로 돌아올 일 없다”라는 코멘트를 직접 달며 반응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복귀해 높은 동정 여론에도 찬물을 끼얹는 결과를 낳았다.


은퇴 선언 당시 268만 명이었던 쯔양 채널의 구독자 수는 자숙 기간 동안 284만 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21일 기준으로 295만 명에 달하며 300만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논란을 빚은 유튜버들이 마치 마약이나 음주운전을 한 연예인처럼 자숙 운운하며 방송을 중단하는 경우가 부쩍 늘었지만, 그들은 반드시 6개월 이내에 돌아온다.

그 이유는 바로 유튜브의 정책상 6개월 이상 콘텐츠가 업로드되지 않으면 해당 계정을 고지 없이 계정을 회수하거나 수익 창출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이다. 영상을 올리지 않고도 기존 영상들은 남아 지속해서 광고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이들이 부랴부랴 복귀한 이유다. 정말 유튜브를 떠날 생각으로 한 사과였다면 돌아오지 않아야 하지만, 그들은 애초부터 그럴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유튜버 6개월 복귀의 법칙은 결국 돈이 핵심!


결국 돈 문제다. 뒷광고 논란으로 유튜브 업로드를 중단한 유명 스타일리스트 한혜연은 사과방송으로부터 5개월이 흘렀다. 꼭 복귀가 아니라도 어떤 형식으로든 영상이 올라올 가능성이 높다. 같은 논란으로 유튜브 활동을 중단한 강민경의 경우 석 달 전 자신의 채널 색깔과 무관한 타 가수 노래 커버 영상을 올려 채널의 생명(?)을 연장했다.


구독자 100만 명을 훌쩍 넘는 ‘하이틴에이저’의 경우 제목처럼 10대를 겨냥해 만든 채널이다. 이들 인기 영상의 제목은 ‘잘생긴 남자가 스킨십으로 유혹했을 때 여고생의 반응’, ‘10대 남녀가 썸을 끝내는 스킨십을 해본다면?’, ‘10대 훈남 훈녀가 서로의 몸에 왁싱을 해본다면?’ 등이다.

‘어른들이 알지 못하는 10대들의 재미있고 엉뚱한 사생활’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야동에나 나올 법한 제목들이 즐비하다. 급기야는 27세의 몸 좋은 남성 출연자가 상의를 벗고 16세, 18세 여고생 앞에서 “만져 볼래요?”라고 묻는 영상까지 올라왔다. 많은 언론의 십자포화가 이어졌지만, 해당 영상은 지금도 버젓이 유튜브에 올라와 있다.

논란을 일으키고 사과를 했던 유튜브 채널들은 예외 없이 여전히 잘 나간다. 이쯤 되면 논란을 의도적으로 일으켜 노이즈 마케팅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사과한다고 해서 구독자가 줄어드는 것도, 수익이 줄어드는 것도 아니니 점점 방송의 수위도 높아지고 표현도 노골적으로 되어간다.

#온라인으로 들어온 탈선,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유튜브가 구독자의 연령대별 비율을 공개하지는 않지만, 앞서 보았던 희망 직업 순위를 감안하면 초등학생을 중심으로 한 10대들의 구독 비율이 가장 높을 것이라는 짐작을 해볼 수 있다.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고 강한 자극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청소년들이 타깃인 이상, 이 유튜버들은 앞으로도 더 자극적이고 원초적인 콘텐츠를 생산할 가능성이 높다. 돈이 되니까.

물론 일부 연예인과 유명인들의 전유물이었던 방송이라는 세계가 평범한 일반인에게도 열리고 독특하고 재미있고 유익한 다양한 소재의 채널들이 생긴 것은 고무적이다. 이제는 외국어를 배우려고 꼭 학원을 가지 않아도, 운동을 배우려고 꼭 헬스장을 가지 않아도, 간단한 차량 수리를 위해 정비소에 가지 않아도 유튜브가 알려주는 대로 하면 되는 세상이다.

그러나 일부 유명 유튜버, 특히 초등학생들이 열광하는 게임, 패션, 연애, 성 지식 관련 콘텐츠를 생산하는 이들의 모습은 천민 자본주의의 노골적인 자화상이 그대로 드러난다. 방송법의 규제를 받지도, 별다른 심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성인만 스트리밍할 수 있도록 제한을 걸어봐야 그 정도 허들을 넘는 것은 요즘 초등학생들에겐 일도 아니다.

지금 일부 유튜브 채널은 그야말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폭주하고 있다.


‘여자가 모텔 가자는 신호’와 같은 영상이 조회 수 200만에 육박한다. 로그인도 필요 없다. 무작정 부모가 그런 영상을 못 보게 할 수도 없다. 10대는 반드시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구글의 차단도 한계가 있다. 처벌도 규제도 기준이 모호하고 어떻게 해도 논란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선이 없는 온라인 세계가 만드는 정신적 디스토피아가 도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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