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PU 수요 증가 틈타 가짜 유통 … 구매 주의
CPU 수요 증가 틈타 가짜 유통 … 구매 주의
  • 김신강
  • 승인 2020.12.20 1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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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12월 20일] - 지난 10월 식품안전의약처가 퓨어블루, 휘퓨어, 클린숨 등 비교적 큰 규모의 마스크 업체들이 시가 40억 원 상당의 가짜 KF94 마스크 1천만 장을 생산하고 그중 400만 장을 넘게 시중에 유통한 것을 적발해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코로나19의 기승으로 마스크가 공급이 달리면서 이른바 ‘돈 되는 장사’가 되자 일어난 일이었다.

명품 가방을 위시한 패션 상품은 요즘도 명동, 고속터미널 등에 가면 어렵지 않게 ‘짝퉁’ 제품을 구할 수 있고, 온라인에서는 이른바 ‘레플리카’라는 이름으로 명품을 아예 해체해 똑같이 만들어주는 업체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마스크나 의류 제품은 정품도 중국이나 베트남에서 생산되는 경우가 많다. 원단이 있는 곳에 가짜 제품도 있다. 그만큼 정품과 유사한 ‘A급’ 제품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국산 마스크가 중국산 마스크보다 값이 비싼 이유는 품질도 있지만 ‘신뢰 비용’이 포함된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전자제품은 상대적으로 가짜에서 자유로웠다. 외관은 그럴 듯하게 꾸밀 수 있을지 몰라도 수많은 회로와 내부 부품까지 똑같이 만들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성능 구현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런데 모든 전자제품의 생산지가 중국 심천이 되면서 이 불가능한 일이 가능해지기 시작했다.

단적인 예로 작년 10월 출시된 애플의 에어팟 프로가 출시된 지 2분 만에 모조품이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 등장했다. 정품 박스, 문구, 시리얼 넘버까지 육안으로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던 가짜 제품은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 자동으로 음악이 재생되거나 탭을 통해 노래를 넘기는 기능, 심지어 에어팟 정품만 연결되는 인터페이스가 아이폰에서 그대로 재생됐다.

상대적으로 음질은 조악했지만 매주 업그레이드가 되어 최근에는 노이즈 캔슬링 기능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스마트폰 모조품이 하루 반이면 생산된다. 필요한 거의 모든 부품과 인력이 몰려 있으니 기존 제품을 분해한 뒤 똑같이 모조품을 생산할 수도 있고, 심지어 벤치마킹해서 더 좋은 제품을 개발할 환경이 조성되는 것이다.

# 심지어 PC용 프로세서, CPU까지도 가짜가 등장했다.


타깃은 역시 가장 많은 사람이 사용하고 개발된 지 오래돼 많은 노하우가 시장에 퍼진 인텔이다. 수년 전에도 모조품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육안으로도 쉽게 확인이 가능했고, 장착 시 작동하지 않는 조악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알리익스프레스, 타오바오, 아마존 등에서 적발되고 있는 가짜 프로세서는 얼핏 구분도 되지 않고 어지간한 PC 환경에서는 퍼포먼스 차이도 쉽게 발견되지 않아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 브랜드도 가리지 않고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판매가 이뤄지고 있다. 누구라도 속을 수 있다는 의미다.

가짜 CPU의 등장은 마스크처럼 코로나19라는 괴물이 만든 측면이 있다. 코로나19로 재택근무, 비대면 교육 등 가정과 기업 모두에서 PC 수요가 폭발하면서 고성능 조립 PC 시장도 유례없이 크게 활성화됐다. PC 부품처럼 정보를 가진 자가 더 싼값으로 구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시장은 특히 직구가 현명한 소비의 상징처럼 여겨지는데, 그런 심리를 역이용하는 판매자들이 이 틈을 파고들고 있다.


내부에 1억 개 이상의 트랜지스터가 집적되는 프로세서를 완전히 똑같이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짜 제조자들은 구형 ‘진짜’ 인텔 CPU를 사용해 신형으로 둔갑시키는 방법을 사용한다. CPU나 그래픽카드와 같이 구형과 신형 간의 가격 차이가 큰 제품군의 특징을 노린 것이다.

과거에는 프로세서 표면에 새겨진 숫자나 모델명을 레이저로 깎아 새 제품으로 바꾸는 ‘리마킹’ 모조품이 많았다면, 요즘은 그 수법이 훨씬 정교하면서 간단해졌다. 히트 스프레더를 바꿔치기하는 수법이다. 구리 재질로 만들어진 이 얇은 판은, 발열이 심한 CPU 집적회로의 냉각에 쓰인다. 크롬 도금을 통해 절연, 전자파 차단까지 돕는다.

이 구리판을 뚜껑 삼아 구형 CPU 위에 덮어버리는 방식이다. 저가형 프로세서 위에 고사양 히트 스프레더가 덮여있다면, 직접 컴퓨터로 성능 테스트를 하지 않는 이상 육안으로 사실상 구분할 방법이 없다. 다행히 아직 국내에서는 가짜 인텔 CPU가 보고된 사례는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가짜 CPU의 발견되는 사례가 중국 또는 홍콩이 많고, 달리 말하면 이 문제들은 모두 직구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국내에서 통계를 잡는 데 한계가 있다는 데 있다. 정식 유통되는 제품이야 통관 코드, 시리얼 넘버 등이 있지만 직구로 개인이 사는 제품들은 신고할 경로도 마땅하지 않고, 국내 기관이 책임질 의무도 솔직히 없다.


정확히는 가짜 CPU가 한국에 없다기보다는, ‘아직’ 발견된 것이 없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단순히 AS가 안되는 이슈가 아니라 가짜 제품이라는 문제에 봉착하게 되면 이는 심각한 상황이다. 코로나19는 아무리 빨라도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될 문제이고 달리 말하면 PC 시장의 부품 수요는 계속 증가할 것이다. 그래픽카드의 값은 쉽게 내려가기 어려울 것이고 가짜 인텔 CPU는 더욱 기승을 부릴 확률이 높다.

그렇다고 쉽사리 애플 M1이나 AMD를 선택하기도 쉽지만은 않은 현실이다. 한국에서 회사 생활을 하는 사람이라면 앞으로도 애플 컴퓨터는 개인 취미 또는 세컨드 PC로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AMD의 사정은 좀 낫지만, 전국 공공기관의 99.95%가 인텔 CPU를 쓰고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업무상 뜻밖의 문제를 마주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내 정식 유통된 정품 사용하는 것


고성능일수록 최저가보다는 보증의 문제로 접근하는 것이 현명하다. 1~2년 쓰고 버릴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인텔 CPU는 모든 경쟁사를 통틀어 역사가 가장 깊고 불량률이 가장 낮다. 수리할 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지만, 한 번 고장이 나면 PC를 아예 쓸 수 없다는 리스크는 무시할 거리가 아니다.


정품 CPU가 3년의 보증기간, 원격 A/S 1년, 왕복 택배비 면제를 강조하는 이유도 병행 수입이 가진 위험성을 고객들이 조금씩 인지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직구 열풍이 한창일 때만 해도 어떤 분야든 정품은 ‘AS를 들먹이며 비싸기만 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하고 있었다.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병행수입 업체들이 자체 입소문을 퍼뜨리는 경우, 정품과 병행수입의 가격 차이가 비상식적으로 심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엔 정품과 벌크 제품의 가격 차이가 눈에 띌 정도로 줄어들었고, 시장이 혼탁해지면서 정품이 제안할 수 있는 투명한 정책, 명확한 혜택 등이 도드라졌다.

직구 시장이 커지면서 공식 유통 업체들도 마진을 줄이고 혜택을 높임에 따라 소비자 입장에서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셈이다. 수급 불안으로 정품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라면 굳이 위험부담을 안고 직구를 해야 할 필요성이 많이 줄어든 것이다.

과거 직구와 내수 시장 가격이 2~3배까지 나던 패션 시장도 정보가 투명해지면서 그 차이가 눈에 띄게 줄었다. 정보가 넘쳐나고 쉽게 공유되는 지금 세상은 너무 많은 소스가 오히려 고객의 피로감을 불러일으켜 고르는 ‘재미’가 아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세상이 됐다.

최저가 중심이 아닌 빠른 배송 중심의 쿠팡이 큰 성공을 거두고, 아마존 검색 시 첫 페이지 매출이 전체 70%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고객에게 쇼핑이 점점 ‘일’이 되고 있음을 뜻한다. 믿을 수 있는 정품으로 스트레스 비용을 줄이는 것이 어쩌면 지금 시대에 맞는 현명한 구매 방식일지 모른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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