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 경유(디젤)차 … 애먼 희생양 소비자는 봉?
애물단지 경유(디젤)차 … 애먼 희생양 소비자는 봉?
  • 김신강
  • 승인 2020.10.09 0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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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젤 저공해 약속 ‘아몰랑~’ 산자부

줬던 혜택 빼앗아 세수 늘리기 … 누구를 위한 미세먼지 정책인가




[2020년 10월 09일] - 얼마 전 미팅이 있어 자주 가던 공영주차장에 주차했다. 2012년 구매 당시 저공해 3종으로 분류된 경유 자동차다. 3시간여의 미팅을 마치고 출차를 하고 평소처럼 주차 관리원에게 “저공해요”라는 말과 함께 앞 유리에 부착된 스티커를 가리켰다. 관리원은 처리하려다 말고 “경유차인가요?”하고 되물었다.

그렇다는 대답에 관리원은 조용히 코팅된 종이 하나를 보여줬다. 2020년 4월부터 경유차에 대한 50% 할인 혜택이 폐지되었다는 내용이다. 정부가 말한 클린디젤 폐지가 이런 거였구나, 약간의 당황스러운 마음과 함께 주차비를 전액 결제했다.

정부는 미세먼지에 관한 다양한 대책을 쏟아내며 그중 하나로 지난 2018년 클린디젤 정책을 폐기했다. 2030년까지 모든 경유차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저공해 경유차 인정 기준을 삭제하고, 2019년부터는 경유차의 친환경 자동차 등록 자체를 막는 내용이다. 과거 저공해 자동차로 인정받은 경유차에 부여하던 인센티브도 폐지한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이것이 2020년 4월부터 적용됐다.

친환경 자동차에 대한 주차 혜택이 공식적으로 폐기되기 전, 주요 기관들이 먼저 움직였다. 인천국제공항 등 국내 주요 공항은 2018년 3월 ‘저공해자동차 보급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그동안 관리자들이 일일이 저공해 스티커를 육안으로 확인해야 했던 불편함을 해소하고 자동할인 서비스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정작 저공해 3종에 대한 주차할인 혜택은 50%에서 20%로 줄였다.

저공해 자동차의 80%가 3종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인천공항의 ‘저공해자동차 보급 활성화’ 정책은 결국 주차비 수익 증대를 위한 꼼수였다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당시 많은 차량이 갑자기 바뀐 정책을 모르고 장기 주차를 했다가 예상보다 많이 나온 주차비에 많은 항의를 했지만, 한국공항공사는 정부 정책에 따른 조치였다고 발뺌할 뿐이다. 급기야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에 개선에 관한 특별법’의 시행에 따라 올해 4월 3일부터 기존 저공해 자동차 중 경유차는 감면 대상에서 제외했다. 빨리 팔라는 것이다.

경유차가 줄어들면 미세먼지 농도가 낮아지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일 터다. 그러나 아무리 지난 정부라 하더라도 많은 국민들은 클린디젤 정책을 보고 고민 끝에 휘발유 자동차 대신 경유차를 선택했다. 수 천만 원에 달하는 중요한 의사결정이다. 클린디젤 정책으로 국내 경유차 비율은 2011년 36.3%에서 2017년 42.5%까지 올랐다. 환경부의 저공해 자동차 승인에 대한 혜택 역시 차를 선택하는 기준에 들어가 있었다는 의미다.

미세먼지 저감이라는 미명 하에 자행된 저공해 경유차 인센티브 폐지는 과연 목표에 부합하는 정책이 맞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인센티브 폐지 이전 공영주차장 50% 할인을 받던 차량 소유자들이 해당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에 바로 1, 2종 저공해 차량이나 휘발유 차량으로 변경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인가.


신규 등록을 막는 것은 앞으로 경유차에 대한 혜택이 없어질 것이니 차량을 새로 구매할 소비자들이 경유차 구매를 주저하게 하여 다른 차종을 선택할 여지를 갖는다는 점에서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노후 경유차가 아닌, 이미 인증을 받은 이들의 혜택을 앗아서 돌아오는 것은 세수 확장과 소유주들의 불만 외에 무엇이 있다는 것인가.

정부의 근시안적이고 즉흥적인 미세먼지 정책은 과거 정부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문재인 정부 들어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대책이 추진되는 자체는 환영할 만하나 과연 얼마나 근본적인 해결에 초점을 두고 진행되는 정책인지는 의문이다.

실제로 지난 9월 감사원은 환경부가 지난해 미세먼지 관리 종합계획을 세우면서 삭감 효과를 실제보다 많이 부풀려 잡은 것으로 확인했다. 환경부는 노후 경유차 146만 대 조기 폐차에 따른 오염물질 삭감량을 산정하며 새 차량 구매로 인해 발생하는 배출량은 반영하지 않았다. 감사원은 하이브리드차를 오염물질 무배출 차량으로 가정하고 도로 청소 차량의 초미세먼지 제거량을 임의로 늘리는 등 통계를 왜곡했다고 밝혔다.

코로나19가 일상을 지배하기 이전 우리 사회의 화두는 오랫동안 미세먼지였다. 코로나19의 창궐이 본격화되고 마스크 대란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었을 때도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나마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세먼지를 대비해 각 가정에 어느 정도의 마스크를 구비해뒀기 때문이었다.

한국환경공단에서 제공하는 자료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미세먼지 농도가 극적으로 낮아진 것은 사실이다. 작년 5월 전국 미세먼지는 50㎍/㎥ 수준이던 것이 올해 5월 34㎍으로, 초미세먼지는 25㎍에서 18㎍으로 각각 32%, 28% 감소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던 중국 공장들, 국내 주요 산업시설들이 코로나 정국으로 가동을 중단 또는 축소한 데 기인한 것이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세먼지의 주원인으로 지목받는 중국에 대한 대책보다 지엽적인 정책으로 일관하는 비판에 대해 일단 할 수 있는 일부터 해야 한다고 밝혔다.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지엽적인 정책도 국민들이 납득할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주차비를 더 많이 낸다고 미세먼지가 줄어들 것 같으면 대놓고 반대할 국민은 없다. 정책의 효과가 어디로 향할지 뻔히 보이는 정책에 비판하는 것이다. 정치권의 논리로 보면 ‘표만 까먹는’ 짓이다.


지난 5월에는 메르세데스 벤츠코리아, 한국닛산, 포르쉐코리아가 국내에서 판매한 일부 경유차에서 배출가스 불법 조작 사실이 적발됐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판매된 이들 경유 차량은 미세먼지가 최대 13배 배출됐다. 2015년 폭스바겐이 처음 적발된 이후 7번째 일이다. 폭스바겐이 배출가스 불법 조작 사건으로 전 세계로부터 비난을 받을 때 일각에서 ‘다 하는 짓인데 폭스바겐이 운이 나빴다’고 하는 말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폭스바겐 때와 달리 이번 사건은 아는 사람도 별로 없이 조용히 지나갔다.

정부는 속고 구매한 경유차 소유주들에게 연대 책임을 물을 것이 아니라, 제조사에 엄한 책임을 묻고 리콜을 비롯해 공격적인 징벌적 배상을 진행해야 한다. 몇 년째 말만 나오다 사라지는 ‘징벌적 손해배상’ 추진이 자잘한 주차비 혜택 빼앗기보다 더 중요할지 모른다.

경유차에 대한 저공해 혜택을 철회한 것은 해당 정책이 정말 효과가 있다기보다 시행하기 ‘쉬워서’일 가능성이 높다.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가해는 묵인되고 외면되는 경우가 많다. 미세먼지 발생에 훨씬 더 큰 원인을 제공하는 기업의 행위에는 일자리, 경기 등 각종 경제적 이유, 법적 분쟁 등 각종 행정적 이유를 들어 시간을 끌거나 아예 넘어가 버리고, 애꿎은 시민들은 잘 타고 있던 경유차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하루아침에 ‘미안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정책은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일까?

좋든 싫든 내연기관의 퇴출은 머지않은 미래가 될 것이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는 2025년, 독일은 2030년, 프랑스는 2040년까지 경유는 물론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겠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매년 천문학적인 전기차 보조금을 대며 전기차 구매를 독려하고 있다. 미래의 지구를 향한 면밀한 대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그러나 클린 디젤을 사라며 부추겨 구매한 소비자들의 혜택을 세상이 변했으니 적응하라며 아무렇지 않게 빼앗아 버리면, 지금 진행되는 정책들에 대한 신뢰성은 함께 떨어진다. 이미 정부는 미세먼지 저감 정책과 유류세 인하를 비슷한 시기에 추진해 비난받은 기억이 있다. 생각 없는 정책은 혈세의 낭비와 국민적 스트레스만 유발할 뿐이다.


By 김신강 에디터 Shinka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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