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1% 커스텀 PC를 만듭니다. 브이지코어 차종엽 대표
대한민국 1% 커스텀 PC를 만듭니다. 브이지코어 차종엽 대표
  • 김현동
  • 승인 2020.08.14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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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스텀 PC, 마이스터가 만드니 역시 다르네!

[인터뷰] 인텔 공인 넥스트 얼라이언스, 브이지코어 차종엽 대표




[2020년 08월 14일] - 획일화한 PC에 강한 거부감 드러내는 요즘 사용자. PC에서도 나만의 개성을 찾는 움직임은 해를 거듭할수록 격렬해지는 추세다. 그 중 수냉쿨링이 대표적이며 개성을 찾아 나선 사용자의 다양한 시도가 즐거움을 더하고 있다. 불과 몇 년 사이 PC 시장은 단순한 조립 그 이상을 기대할 수 없던 것에서 이제는 문화로 정착했고, DIY를 넘어 창작의 경지라 불리는 수준까지 이르게 됐다.

덕분에 단순한 관심만으로 접근한 이라면 넘지 못할 벽이 생겨났고, 한 단계 도약을 위한다면 일명 ‘꾼’이라 불리는 실력자의 손길이 더욱 간절해진 상황. 누구는 그렇게 태어난 PC를 작품이라 부르고 누구는 넋 놓고 오랜 시간을 바라보곤 한다. 분위기 좋은 환경이라면 필시 인테리어 요건 충족에 부족함 없으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과감히 여는 지갑 덕에 한동안 면식 수행이 불가피한 상태겠지만 그러한 궁상조차도 즐기는 것이 요즘 문화란다.

과거라면 감히 상상도 못 했던 풍토가 다채롭게 펼쳐지는 요즘 PC 시장에서 답답하던 PC에 생동감을 불어넣고 덩달아 연모하던 마음에 맹렬하게 불타오르던 소유욕을 상대로 마침표를 찍게 하는 마법을 부리는 이의 인기는 날로 상승세다. 이러한 분위기 덕분에 일명 마이스터라 불리는 이의 내공을 결코 가볍게 터부시 않고 그렇다고 하루아침에 뚝딱 쌓아 올린 것도 아님을 공통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튜닝을 한낱 컴 덕의 취미로 치부하던 오래전을 떠올리면 180도 달라진 업계 분위기가 새삼스럽다!

그 중심에서 남다른 존재감 굳히며 세심한 손기술로 솜씨 뽐냈고 기발한 발상으로 주목받으며 튜닝 시장에서 특별한 위치까지 올랐으니 브이지코어 차종엽 대표가 선보인 제품은 시장에서 애초에 작품처럼 취급된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기에 그에게 스승이라면 본연의 호기심이다. 초등학교 시절 처음 마주한 컴퓨터에 매료된 후 호기심 충족 하나만을 목적으로 일본 아키하바라 현장을 향했고, 한발 빠르게 색동옷을 갈아입던 PC 시장에서 왜 그렇게 심장이 두근거렸음에 답을 찾는다.

“한국에 돌아가 나만의 PC 사업을 하고 싶다”는 울림에 얼마나 고민했을까?

당시 충분히 보장된 길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고, 안정된 삶을 누리고 있던 터라 수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더 늦으면 후회할 것 같다며 30대 후반에 부리나케 오랜 시간 억눌렀던 꿈을 실현하고자 인생 2막에 발을 내디딘다. 경험이라면 일본 현장 경험이 전부였던 차 대표에게 용산이 쉽사리 기회를 제공할 리 만무했던 것. 용산은 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거대한 시스템과 다를 게 없었고 시작이 용산이 아닌지라 구성원으로 인정받기까지 무척 힘들었다고 회상하는 목소리에서 당시의 힘듦이 묻어나왔다.

모든 것을 내려두고 PC 하나가 좋아 시작한 일에서 난생처음 수없이 참담한 심정을 마주했단다. 동시에 낯선 외부인을 쉽게 용인하지 않던 시스템을 향해서는 수없이 한탄했다. 얼마나 두드렸을까! 마침내 외침에 화답을 듣기까지 족히 1년간을 매일 새벽 3시 전에는 퇴근하지 않던 일상을 무수히 반복하며, 평균 20~30년간 용산이라는 조직에 녹아든 베테랑을 상대로 존재함을 알렸다고.


“막막했습니다. 제가 그 시장에서 살아날 방법은 없었어요.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고 버텼던 것 같아요. 뒤를 볼 여유도 사치였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나아갔어요. 조금 더 일찍 문을 열고, 남보다 두 배 세대 더 뛰는 게 유일했어요. 딱히 주문이 있어서가 아닌 뭐라도 하려고 애썼던 것 같아요. 어느 사이 단골이 생겨났고, 기업, 학교, 관공서, 연구단지까지 납품하던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이제야 말하는데, 이렇게 힘든 분야인 줄 몰랐어요.”

서울 그리고 인천, 지금의 자리에 안착하기까지

모두가 PC의 메카에 용산을 한결같이 꼽는다. 물론 차 대표 또한 한 때는 같은 심정이었고 그곳에서 다채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았던 젊은 아이콘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인천으로 옮겼고 벌써 두 번째 확장 이전을 거듭했다. 용산의 일원이 되기까지 결코 녹록지 않은 시련을 거듭했음에도 미련 없이 인천으로 향한 것에 인텔의 영향이 주효했다. 그 시기 인텔이 시장을 선도할 전문 파트너를 전국에 섭외했고, 차 대표는 튜닝이라는 분야에서 익스트림 마이스터로 활동할 기회를 잡은 것을 천운이라 표현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내공은 더욱 탄탄해졌고 덕분에 이보다 한 단계 높은 등급인 넥스트 얼라이언스에 소속되며 활동에 차별화는 더욱 분명해졌다. 남다른 안목과 과감한 결단 그리고 동물적인 직감은 인천에서도 통했다. 용산에서 인천으로 자리를 옮기던 시기에 오버클럭 그리고 튜닝에 관한 붐이 일었고 당시 인텔에서 주목할 정도로 돋보이는 시도와 감각으로 주목받던 브이지코어는 마찬가지로 인천에서도 주인공이었다.

같은 부품 조합으로 PC를 만들어도 차 대표가 만든 PC는 전혀 다른 성격을 내세운다. 필요하다면 케이스를 가공했고, 수랭도 커스텀으로 구성하며 선보인 결과물은 보는 이마다 ‘우와’ 감탄사를 연발하게 했다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무려 4년 그리고 반 개월을 추가로 소요했다. 그리고 당분간도 계속 뛰어야 함을 내세운다. 아직은 성공이라는 결심을 만끽하기보다는 투자라는 단계를 지나는 시기임이 이유다. 동시에 주목하던 시장이 대세가 되었음에도 여전히 전체 규모가 작다는 점과 협소한 시장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진 것도 해결해야 할 과업이다.

그러함에도 사용자가 브이지코어를 찾는 이유가 궁금했다. 용산에서도 튜닝을 내세운 업체가 널렸는데 굳이 인천까지 발길을 돌려 차 대표를 찾게 한 비결 말이다. 젊은 CEO답게 직설적으로 대답한다. 일본 시장과 한국 시장 둘 모두를 경험했기에 각각의 장점만을 수용한 차 대표만의 고심은 소비자를 대하는 방식부터가 상담의 시작이란다. 마진이 더 남는 부품을 권유하거나 보유하고 있는 부품을 위주로 추천하는 견적은 애초에 관심 밖이다.


“소비자가 모를 수 없습니다. 결국, 뒷말이 나와요. 판매할 PC 견적을 뽑는다며 접근하면 안 되고 내가 사용할 내 가족이 사용할 PC를 조립한다는 자세로 응해야 합니다. 가족이 쓸 PC인데 대충 뽑을 수 있겠어요. 한두 달 사용하면 문제 될 부품을 선택하겠어요? 가격이 싸다고 검증 안 된 제품을 무작정 권하겠어요?” 산전수전 다 몸소 터득한 노하우가 상담 테이블 위에서 또 한 번 빛을 발휘하며 소비자의 신뢰 지수를 수직 상승하게 한다.

그러한 배경에 사용자 관점에서 고민하며 애초에 장사꾼이 아닌지라 엔지니어 마인드로 접근하며, 최선보다는 최상의 결과물을 선보이는 게 그의 욕심이다. 푼돈에 연연하지 않고, 퀄리티를 보장하는 제품 위주로 선별하는 것도 그만의 공식이다. 취급하는 제품에서 브랜드 선호도는 아무래도 인텔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다. 인텔 공식인증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공고히 유지되는 한 튜닝 노하우를 뽐낼 시스템에 인텔은 최상의 기반 플랫폼이다.

스토리지에 삼성 선호도가 높지만, 최근에는 마이크론 비중도 부쩍 증가세다. 데이터 안정성에 성능이라는 두 박자 균형은 인텔과 함께 반도체를 합자 설계하는 브랜드였기에 신뢰할 수 있다. 파워 브랜드에는 맥스엘리트를 우선한다. 보급형일 경우는 게이밍엘리트와 고급형일 경우는 시소닉으로 모든 시장을 포용할 수 있단다. 오랜 사용 경험에서 비롯된 판단이다. 실제 지금까지 사용해본 제품 가운데 불량률이 0%라는 것에서 남다른 감명을 받았다고 강조한다.

대한민국 1% 커스텀 PC 제조 장인을 꿈꾼다.

PC를 구차한 설명보다는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알 수 있음을 고집하던 차종엽 브이지코어 대표. 그러한 소신은 창업 초기 용산에 ‘체험존’ 오픈을 욕심 내게 했고, 비용 부담이 과한 데다가 불필요한 투자라는 주변의 지적에도 ‘필요함을 고집’하며 결국 실현한 바 있다. 당시를 돌이켜봐도 ‘그건 잘한 선택’임을 재차 확인했는데, 인천에 확장 이전한 매장에도 마찬가지로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체험존이 한 공간을 차지하고 방문객을 맞이한다.


3~4평에 불과하던 초기 규모와 비교하면 더 쾌적하고 아늑하기에 한층 여유롭게 제품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번 구비하면 족히 2~3년은 사용할 PC를 단지 말로만 설명해서 소비자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음에 공간의 필요성은 과거에도 마찬가지였지만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변함없을 전망이다. 가능하다면 한층 돋보이도록 꾸미고 싶은 욕심을 내비쳤다. 그러기 위한다면 브이즈코어의 도약은 필수적이기에 참신한 아이디어로 PC를 돋보이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차 대표에게 PC는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있던 열정의 결과물이자 그만의 경쟁력을 증명하는 세상 유일한 도구요. 사용하는 이에게는 하나의 작품으로 소유욕 오래 변함없게 만드는 것이 최종 목표다.

그러한 이유로 계속하는 시도에 때로는 좌절을 때로는 한계를 수없이 체감하지만, 그 또한 즐기는 중이다. PC 케이스만 해도 원하는 제품이 없어 DIY를 꿈꾸는데 도면을 수없이 떠올리고 고치기를 반복하며 세상에서 하나뿐인 브이지코어 마크를 부착한 PC의 탄생을 매일 같이 공모한다. 현대 사회에서 PC는 모든 작업의 필수 도구가 되었건만 그 많은 도구 사이에서도 빛을 뽐내는 도구로 만들고자 차 대표의 목표는 지금은 거친 자갈밭을 지나며 무수히 깨지고 있다. 하지만 머지않아 매끄럽게 다듬어져 빛이 날 전망이다. 마음속에 열정을 품고, 포기하지 않는 도전이 계속하는 한 브이지코어가 꿈꾸는 대한민국 1%로 우뚝 서는 그날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By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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