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아픈 어머니 삶, 글로 써 내려간 사모곡. 김은상 시인
가슴 아픈 어머니 삶, 글로 써 내려간 사모곡. 김은상 시인
  • 김현동
  • 승인 2020.05.03 02: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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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신하신 어머니 사연 담은, 소설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

[인터뷰] “글은 내 삶의 한 부분” 김은상 시인




[2020년 05월 03일] - 그 시대 어머니는 으레 그랬음을 당연히 여겼다. 나의 어머니도 그랬다. 슬픔은 마음속으로 삭히고, 기쁨은 자식에게 안겼으며, 고통은 당신께서 혼자 감당하며 한세월 다 보낸 지금 머리에는 어느 사이에 흰 눈이 내렸고, 곱디고왔던 손엔 세월의 흔적으로 주름이 가득하다. 7남매 뒷바라지로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평생을 고생만 했음에도 누구 탓 한번 하지 않고 오직 내 새끼만 챙기며 살아오신 우리 어머니. 작가 김은상의 소설 빨강 모자를 쓴 아이들에는 어머니가 살아온 시대상에 여성이 겪어야 했던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적인 삶을 사셨어요. 아무리 사고를 치고 돌아와도 늘 따뜻하게 감싸주셨어요. 늘 쪼들리던 환경에서 잘못을 꾸짖고 강요하셨다면 성숙하지 못한 어린 마음에 반항심을 드러냈을 거에요. 단 한 번도 그러지 않으셨어요. 싫은 소리 한번을 안 하셨어요. 늘 잘 될 거야. 네 탓은 아니야. 옮은 방향에서 지지하셨어요. 사고 치던 형제를 믿어주신 유일한 어른이셨죠.”

‘가난’이라는 단어조차도 사치라 여길 정도로 녹록지 않던 가정환경. 이유 모를 가장의 폭언이 하루가 멀다 하고 반복하던 일상에서 단 한 번도 싫은 소리 하지 않으셨고 순종적인 모습으로 가정을 지키신 어머니셨다. 당신은 그것이 사랑이거니 그것을 가정을 유지하는 방법이거니 그것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숭고한 희생이거니. 여겼을 거다. 그저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평생을 바친 어머니 이야기를 소설로 옮겨 처음 출간했던 당시 어머니 나이는 여든두 살.

늘 그 자리에 자식의 앞길을 비추며 등대처럼 계셨기에 한없이 강할 것이라는 믿음은 큰 착각이었다. 급격한 건강 악화에 병원 신세를 지는 날이 늘면서 김은상 작가의 마음도 한동안 먹먹했다고. 간신히 마음을 추스르고 써내려간 소설에는 그가 마음에 담아둔 가슴 아픈 어머니의 지난 세월을 그대로 옮겨 담아냈다. 단 한 번도 누구에게 하지 못했던 아니 할 생각을 해본 적 없던 사연을 공개하기로 한 것은 그게 자식으로써 보답할 수 있던 유일한 도리였다고.

“어머니가 살아온 인생에 당연한 건 없었어요. 책에 나오는 첫 문구에 ‘진정한 사랑은 헌신을 잉태하며 헌신은 헌신을 통해서만 불멸에 닿을 수 있다’라는 구절이 나와요. 그게 인생이셨고 그 모습을 보고 자란 우리 형제가 더 늦기 전에 보상해드려야겠다고 각오하게 된 거죠. 어머니는 당연히 그래야 해! 라고 생각한다면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이 얼마나 공허할까요! 제가 책을 쓴 이유입니다. 책 한 권에 어머니 인생이 그대로 담겼고 보내주신 사랑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글을 읽으시고 감격이 북받쳐 눈물을 보이셨을 때 그동안 얼마나 힘드셨을까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김은상 작가(시인)와의 1문 1답

Q. 작가님께 글(시)이란 무엇인가?
A. 학창 시절 칠판에 시를 적었던 기억이 제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본격적으로 시를 쓰게 된 것은 20대 중후반 무렵이다. 당시에는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던 시기였기에 문예집 코너를 뒤져가며 배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렇게 좋아했지만, 시를 쓴다는 게 쉬운 길은 아니었다. 내게 시는 인생의 모든 것이다. 그래서인지 사랑에 빠진 남녀처럼 글(시)을 쓰는 것을 잠시 중단했을 때 굉장히 슬펐다.

글이란 다양한 소재 또는 주제 또는 영감이 반영되는 과정이다. 내면을 성찰하고 다양한 사회 현상을 조명하고 이 과정이 글을 통해 세상에 퍼져나갔을 때 그 자체만으로 혁명이라는 요소가 될 수 있을까? 를 고민하는 것 또한 오직 글을 쓰는 주체가 내가 되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즉 인간의 내면을 표현하는 방식이 바로 글이다.

Q. 신학을 그만두고 작가(시인)로 등단했는데 후회는 없나?
A. 신학을 공부할 당시 궁금한 것이 많았다. 신앙이 그렇지만 학문적 이해보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감각적으로 논리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다. 이는 시가 표현하는 맥락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다. 특히 성경에 유독 은유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하는데 시에도 은유적인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신학을 그만뒀다는 표현보다는 작가라는 과정으로 신학을 이어가고 있다고 보면 된다.

Q. 어머니의 사연을 공개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A. 어머니는 굉장히 선하신 분이셨다. 그리고 자식에게 헌신적인 분이셨다. 그게 가족의 역할 어머니의 당연한 역할이라 생각했었다. 그 사랑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고 이제라도 당신이 우리를 위해 헌신하셨던 숭고한 결정을 인정받고 인정받게 자식으로써 행동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겼다. 너무나 큰 희생으로 형제가 자랄 수 있었지만, 그 사랑이 고귀해 다 갚을 길은 없지만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리였기에 가장 자신 있던 글을 통해 행동으로 옮겼다.

Q. 향후 계획이 궁금하다.
A. 나는 굉장히 모순이 많은 사람이다. 성장이라는 표현보다는 나의 모습을 잘 이야기 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에 대해 제대로 이야기 할 수 있다면 독자가 봤을 때 나의 소설을 나의 시를 통해 깨달음을 겪지 않을까 생각한다. 작품이 다소 비관적이라는 의견도 들었는데, 이 또한 희극의 한 과정이라고 이해해달라. 여러 가지 내용이 있겠지만 인간의 내면에 대한 성찰과 자본주의 종교화에 대한 논의 등에 대해 성찰하고자 한다.


By 김현동 에디터 hyundong.kim@weeklypos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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